[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포츠머스대학교 연구팀이 케냐 라무(Lamu) 섬에서 사육되는 당나귀와 소의 배설물에서 100%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플라스틱 오염이 육상 작업동물의 건강 악화와 사망, 나아가 식품 체계와 인간 건강 위험까지 직접 연결된다는 점을 포괄적으로 보여준 첫 연구라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연구는 포츠머스대학교 레볼루션 플라스틱(Revolution Plastics) 연구소가 당나귀 보호구역, 플로피 프로젝트, 케냐 해양수산연구소 등과 함께 수행했으며, 학술지 ‘케임브리지 프리즘(Cambridge Prisms)’에 게재됐다.
그동안 플라스틱 오염 연구는 주로 바다거북, 해조류, 해양 포유류 등 ‘해양 동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플라스틱이 배출되는 곳은 육지이며, 인간과 밀접하게 생활하는 가축이나 육상동물에 대한 영향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레볼루션 플라스틱 연구소 부소장인 크레시다 보이어 교수는 “대부분의 플라스틱 오염은 육지에서 발생하지만, 육상 동물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만성적으로 연구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결과는 이 지식 격차를 얼마나 시급히 메워야 하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당나귀·소 배설물 속 미세플라스틱 정량 분석 ▲쓰레기장·농촌지역 등에서 동물의 자연 먹이 활동 관찰 ▲플라스틱과 당나귀 복지에 대한 주민·관광객 인식 조사 등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라무섬의 실태를 추적했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배설물 분석에서 나왔다. 연구팀이 수거한 당나귀와 소의 배설물 샘플 전부(100%)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 것이다.
라무 당나귀 보호소의 수의사들은 이미 “플라스틱을 먹고 난 뒤 발생하는 콜릭(복통‧장폐색 등)으로 매년 당나귀가 죽고 있다”고 수차례 경고해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그 피해가 일부 개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육 개체 전반에 걸친 상시 오염임을 수치로 드러냈다.
클리닉 기록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콜릭 진단을 받은 당나귀는 총 108마리로, 월평균 8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14마리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2025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지금까지 91마리가 콜릭 증세로 치료를 받았고, 그 중 16마리가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장 관찰 결과도 심각했다. 연구팀이 폐기물 처리장과 농촌 지역 등에서 당나귀·가축의 먹이 활동을 추적한 결과, 동물들이 한 번에 섭취하는 10~20개 먹이 항목 가운데 최소 1개는 플라스틱 조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라무섬에서 당나귀는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지역 문화와 관광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풀과 식용 식물의 부족, 사료 가격 변동 등으로 인해 많은 당나귀들이 쓰레기장과 길가 폐기물 더미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참여한 당나귀 소유주의 약 절반은 “사료 가격이 너무 불안정해 동물들에게 항상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기 어렵다”며 “어쩔 수 없이 당나귀를 방목해 스스로 먹이를 찾도록 두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동물들이 무분별하게 폐플라스틱을 섭취하도록 방치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연구가 특히 경고하는 지점은, 플라스틱 오염이 동물의 건강 문제를 넘어 식량안보와 인간 건강 위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미세플라스틱이 다음과 같은 경로로 인간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해결책이 동물을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관리하는 구조적 변화에 있다고 말한다.
라무 사례는 국제 기구의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싱오이 박사는 최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로마 본부에서 연 특별 행사 ‘농식품 시스템의 플라스틱과 하나의 건강: 위험 이해 및 관리’에 초청돼 라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번 사례가 ‘원헬스(One Health)’ 관점, 즉 인간·동물·환경 건강을 하나의 연결된 체계로 보고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국제 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오염이 동물, 사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지를 보여주는 첫 사례”라며 “지역적 실천과 더불어, 전 세계적 규제·협약·투자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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