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의 계절
고정순 글·그림
길벗어린이 | 112쪽 | 2만원
‘그깟 호기심’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고구마. 동물 흉내 내면서 방귀 뀌기, 코로 리코더 불기를 잘하는 엉뚱하고 발랄한 고구마에게도 마음속 깊이 숨겨둔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거였다.
머릿속에 괴물이 살고 있어 글자를 읽고 싶을 때마다 방해하는 듯하다고 생각하는 고구마는 학교에서 그저 공부 못하고 받아쓰기를 할 때마다 배가 아픈 아이였다. 비밀을 아는 언니와 학교 친구 상숙이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고구마는 늘 받아쓰기 0점에 나머지 공부를 면치 못했다. 고구마가 의기소침하고 속상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편지를 쓸 때 짝꿍 편지를 몰래 따라 ‘그리’고선 “짝꿍의 마음까지 그대로 따라 그린 것만 같았다. 생각도 마음도 전할 수 없는 답답한 어른이 되는 걸까”라며 무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고구마는 전교에서 가장 빨리 달리고, 벌레를 잘 잡는 아이다. 쪽방촌 공동변소에 발이 빠져도 혼자 기어 올라오고, 엄마가 바자회에서 사온 친구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고 등교할 만큼 씩씩하고 넉살도 좋다.
자신의 속도로 차근차근 성장하던 고구마에게 어느날 간판의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행복분식’. 고구마가 글자와 처음으로 눈을 맞춘 날이다.
화이트레이븐스 선정 도서, 대한민국 그림책상 특별상 등을 수상한 고정순 작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특별한 성장담을 선보인다. 중성적인 캐릭터인 고구마가 실패하고 속상해하는 마음을 섬세하게 그리면서도, 고구마의 밝고 씩씩한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가족과 친구는 고구마를 지지하며 조용히 기다려준다. 한 계절을 지나 새로운 계절로 나아가듯 ‘난독의 계절’을 지나온 고구마처럼, 우리도 인생의 한 시기를 통과해왔고, 통과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