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상 공공상생연대기금 집행위원장
<편집자註> 시민사회는 '시대의 창(窓)'일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의 장(場)'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선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人)과 쉴새없이 소통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스토리人] 코너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예전만 못하다지만 공기업은 청년을 포함한 모두에게 여전히 좋은 일자리다. 정년보장과 같은 안정적인 고용과 복지혜택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지금 젊은층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단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정년을 내던지고 공익재단에 투신하는 이가 있다면 공기업을 꿈의 직장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꽤 무모하게 느껴질 법하다. 이준상 공공상생연대기금 집행위원장이 아마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 아닐까. 낯은 설지만 이름에서부터 ‘공공’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이 집행위원장을 NGO저널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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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행위원장님, 반갑습니다. 우선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어떤 곳인지 독자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이름 그대로 풀면 어떤 일을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철도공사나 한전과 같은 공공부문 각종 공사의 노사가 함께 기금을 출연해 주변 비정규직 노동자나 청년들, 학생 등 우리 눈길과 손길이 필요한 곳에 지원해 함께 연대해 잘 살아보자는 뜻으로 만든 재단법인입니다. 2017년에 만들었으니 8년차가 됐네요."
- 공공부문 노사가 함께 출연했다니 놀랍습니다.
"네, 회사 노동자들과 임직원들이 자기 성과급의 일부를 떼어 출연해 만든 기금이니만큼 뜻깊다고 할 수 있어요. 처음 640억 원 정도의 규모로 출발해서 매년 20억~30억 원 규모의 예산으로 각종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산은 따로 수익활동을 하여 만드는 것은 아니고 자산을 운용해 거둔 이자수익 등으로 사업하는 것이죠."
- 그렇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는 겁니까?
"이 기금은 공공 부문 노동자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돈은 아니에요. 사회와 연대하자는 의미이기 때문에 분야별로 다양한 사업을 합니다. 재단에서 지속적으로 하는 사업으로는 상생과 담론을 확산하고자 하는 플랫폼 소셜코리아 운영이 있고요, 공공부문 공모사업이 있습니다. 또 노인,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나 공익재단 NPO 사업 공모를 받아 지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2천만 원 지원하는 사업 공모를 받아 심사를 통해 선정하고 예산을 지원해주는 식이죠. 또 일테면 시민사회단체, 복지단체에서 일하는 경비 노동자들 일하는 공간이 열악해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 하면 공모를 통해 재단에 예산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공모사업이 굉장히 많습니다."
- 지금까지 많은 사업을 해오면서 특히 보람을 느꼈던 사업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조합이나 회사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진행했던 사업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죠.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던 여성 청소 노동자들을 위해 하나의 시 지역 단위로 지정하여 3년에 걸쳐 휴식 공간을 마련하거나 현대화한 사업을 했을 때 그분들의 호응이 컸었습니다.
또 노동이나 여성을 주제로 한 학술 연구 지원도 의미 깊습니다. 이런 연구지원 사업은 당장 성과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다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대학생들 지원도 보람이 있습니다. 대학생은 미래의 노동자로 대학 내의 다양한 동아리가 있는데 청소노동자 실태조사를 한다든가, 노동자와 연대하거나 봉사 활동하는 의미 있는 동아리 단체를 선정, 지원했던 일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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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지원사업을 하면서 실제로 변화하거나 개선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긴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령 전국에 많은 청소 노동자들이 있는데, 어느 지역에서 좋은 취지의 사업 계획을 갖고 오면 일회성 단발로 끝나기 아쉬운 사업이 있어요. 그럴 경우 최대 3년까지 지원합니다. 처음엔 믿지 못하고 무슨 물건 팔러 오는 게 아니냐 의심하던 분들도 사업이 계속되면서 저희를 신뢰하게 되고 굉장히 좋아하시죠. 그런 경우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 위원장님은 재단 설립 때부터 함께 하신 건가요?
"하하. 아닙니다. 재단에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저는 원래 공공부문 노동자 출신입니다. 한국전력에서 일했고 재단에 오기 전 남동발전에서 퇴직했습니다. 공적인 역할에 관심이 커서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죠. 정년을 마칠 수도 있었지만 좀 더 의미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사표를 내고 작년 재단에 집행위원장으로 오게 됐어요."
- 재단 밖에서 바라볼 때와 직접 안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느끼는 소감이 또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보통 누구나 자기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쉽게 비판하잖습니까?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밖에서 볼 때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일은 안 하고 노는 쉬운 자리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에요. 우리가 돈을 모아 재단에 몇 백억 원을 출연해주었는데 과연 제대로 사용하는지도 모르겠으니 신뢰도 떨어지고 말입니다. 저도 남들과 시선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와서 지금까지 사업한 내용들을 살펴보니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지요. 원래 공기업 노동자로 일했을 때도 자부심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공기업 노동자들이 낸 소중한 돈으로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게 사회 곳곳에 직접 돈을 집행하니 기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예전엔 돈을 벌기 위해 일했다면 이곳은 단적으로 얘기해 돈을 쓰는 직장이니까요. 하하."
- 재단 집행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겁니까?
"보통 재단에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이사회가 있고 이사장이 있잖아요. 우리 재단의 경우 집행위원회는 비상근으로 1년에 두세 번 중요한 결정을 하는 곳이고 집행위원장의 경우 실제 역할은 사무총장과 같습니다. 집행위원장은 이곳만의 독특한 명칭이라고 보면 돼요. 이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설립 주체가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내부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금융노조, 공공노련, 공공연맹 등 거대 산별 연맹 위원장들이 결의하고 출연해 만든 겁니다. 물론 기금 출연에는 공공기관 사용자, 즉 정부의 공공기관들도 참여했지만요. 공공부문 노동자가 직접 와 경영도 하고 집행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집행위원회 체제로 만들었고 양대 노총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집행위원장을 파견하는 형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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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근자는 몇 명인가요?
"상근자는 6명이에요. 이 인원이 1년 내내 각종 연대사업과 공모를 받아 사업 예산을 집행하고 또 수시로 현장을 다니면서 자체 사업도 진행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 올해 주력하는 사업 분야랄까, 아젠다가 있습니까?
"올해에는 약 1억 원 규모의 일터 사진 공모전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일반 국민이 보기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사회 곳곳의 이들이 어떤 일들을 하는지, 일터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공모전 열어 시상도 하고 순회 전시도 할 생각이에요."
- 입법과 관련해 국회에 제안 같은 것도 합니까?
"그럼요. 예를 들면 노동이사제가 2년 전에 도입됐잖습니까. 지금까지 이사들은 정부나 회사에서 임명하는 사람만 87개 공공기관 이사가 될 수 있었는데, 법이 개정돼 노동자 출신 노동자여야 이사가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제도가 안착돼 가고 있지만 수정 보완이 안 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노동이사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육도 하고 세미나도 열고 토론해 개정 입법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고 있죠. 또 말씀드린 청소노동자들의 인권과 환경 개선을 위한 입법 토론회 같은 것도 국회에서 개최하여 정당에 제안도 합니다."
-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셨다고 했는데, 원래 노조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더군요. 저는 16살 때부터 노동자 생활을 했습니다. 구로공단에서 공장생활을 하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한국전력에 공채로 입사하게 됐고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의식이 깨였다고나 할까요?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었는데 노동조합은 그때만 해도 간선제였던 거예요. 저는 이건 모순이라고 생각하고 한전에서 노동운동을 하게 됐습니다. 한전이 전력산업 구조개편이라는 명분으로 6~7개로 회사가 쪼개지면서 그 과정에서 제가 앞장서서 싸우게 된 것이죠."
- 주변 환경이 위원장님을 투사로 만든 셈이군요.
"하하. 그런 셈인가요? 만약 전력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발전소를 분할하여 매각하는 이슈가 없었다면 저도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니까 내 신념이 반, 주워진 여건이 저를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끌어간 것 반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 자기가 공기업에 입사했는데 회사를 분할한다든지 해외 매각한다면 노조를 만들 수 있고 투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 역시 그런 경우이죠. 어려서부터 노동자 생활을 했지만 처음부터 투사가 될 정도의 의식은 없었습니다. 나중 여건이 주어지고 스스로 공부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된 것이죠.
저는 한전에 있을 때부터 우리의 사용자는 국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한전 사장이 아니라 전기요금을 납부해주는 국민이라는 거죠.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자부심과 긍지가 있어요. 공기업 사장은 3년짜리 계약직에 불과하니 우리의 사용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요.
그런 생각이 노동운동으로 이어졌고 특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국가발전에 동참하고 사회모순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함께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연대운동이나 비정규직 철폐운동, 환경운동 이런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주력으로 활동했습니다. 연대투쟁, 즉 사회개혁 투쟁에 많이 참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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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요. 연대운동에 특히 관심이 많고 주력으로 활동했다고 하셨는데,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 조직 간 화합이나 결합이 잘 되던가요?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보면 그 말은 정말 뜬구름 잡는 거예요. 누구나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정말 어려운 문제이거든요. 노조와 시민사회단체를 구분하다 보니 마치 별개의 영역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노동자가 시민이고 시민이 노동자여서 둘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둘을 분리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노조를 오래 하다 보면 노조의 투쟁문화나 자기 조합, 자기 사업장 안에 갇히는 부분이 있어요. 반면 시민사회단체의 경우 본인들보다 주변을 살피는 문화가 있어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고 바라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노동하는 사람들, 노조 활동하는 사람들도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대활동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조합원들만 대상으로 하는 노동운동으로는 더 이상 노동자의 이익을 찾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국가와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노동자들의 삶도 풍족해지는 것이거든요.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되든 우리 임금만 올리고 내 권리만 찾는다는 건 불가능해요. 노조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닫고 시민사회단체 영역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이들과 연대해야 하는 겁니다.
또 시민사회에서도 노조는 본래 조합원들의 이익을 지키는 이익단체라는 점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재단에서도 양쪽의 조화를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특히 올해는 전국 모임도 가져볼 생각입니다."
- 공공상생연대기금이 하는 일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재단의 이런 면이 좀 잘 알려졌으면 하는 점이 있습니까?
"공기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선입견이나 부정적 인식이 꽤 있지만 공공분야 노동자들도 우리 국민과 사회에 대한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 개인적 이야기를 해서 안 됐지만, 저는 평생 한전 발전소에서만 근무했는데요, 24시간을 근무하고 집에도 못 가고 명절 때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았어요.
사기업과 비교해도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나 열악한 환경 등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공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정치권은 공기업과 도매급으로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함께 때리곤 합니다. 그러면 국민들이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부분이 바로 공공분야에요. 사적인 이윤을 추구해선 안 되며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합니다. 전기, 도로, 가스, 철도 등 이런 공적 분야에 대해 일일이 국민에게 알릴 수 없다는 답답한 상황에서 기금이 만들어졌습니다. 공공상생연대기금은 바로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연대의식과 뜻이 모인 곳입니다.
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알아주지 않더라도 이 기금으로 국민에게 보답하는 활동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익적 활동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때때로 왜곡되거나 지나치게 과소평가될 경우 저희로서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긴 합니다. 어찌됐든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이런 큰 금액을 출연하고 앞장서서 이런 재단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 재단과 위원장님의 장단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단기적으로 기금 사업을 좀 더 알차게 꾸려가는 것이고요, 장기적으로는 곧 설립 10주년이 되는 만큼 지금까지 해온 활동들을 데이터로 잘 축적하여 홍보도 잘해서 재단의 규모나 여러 면에서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국민과 노동자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재단을 발전시키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자 꿈이죠.
개인적으로는 40년 가까이 공기업 노동자로 일하며 경험한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시대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더 극한적인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과 특히 젊은 노동자들을 위해 제가 도움을 주거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