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나야 감옥 가고 죽어도 상관없지만, 우리 국민 어떡하나, 청년세대 어떡하나….”
관저 퇴거 전인 4월 9일, 한국사 강사 전한길을 만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다. 이번 계엄·탄핵 과정에서 열렬한 윤석열 지지자이자 부정선거 주창자로 ‘커밍아웃’을 한 전씨는 4월 9일 면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윤 전 대통령이 위의 말을 되풀이했다고 공개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났듯 윤석열은 상습적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쟁이의 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된다. 구속 취소로 나와 있는 윤석열의 의중은 감옥으로 되돌아가기도 싫고, 죽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국민과 청년세대를 언급한 것은 국민과 2030 청년세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서 달라는 당부다.
굳이 퇴거 하루 전 그동안 전국을 돌며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의 주요 연사로 나선 전씨를 만난 이유다.
전한길 만난 윤석열, “청년세대 걱정”의 속뜻
“내란죄에는 무기징역이나 사형밖에 없다. 윤석열은 모든 목표가 국민의힘을 방패 삼아 감옥에 안 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 문제다. 국민의힘 지도부 위부터 아래까지 윤석열 계엄에 동조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한마디로 다 윤석열에 오염된 사람들, ‘내란 피폭자들’이다.”
공희준 정치평론가의 말이다. ‘국민의힘이 앞으로 치르게 될 조기 대선을 비롯한 정치 일정에서 윤석열의 자장(磁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윤석열은 감옥에 안 들어가는 것이 최우선 전략이다. 다시 들어가면 못 나온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감옥 안 가는 것밖에 없다. 국민의힘을 홀랑 태워 먹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과 부인을 건사하는 것에만 관심 있다. 국민의힘도 윤석열을 잘 모른다. 국민의힘 의원 중엔 법조인 출신이 많은데 윤석열은 특이한 캐릭터다. 윤석열은 악인이 아니라 광인이다. 국민의힘 주축이 ‘빌런’이라면 그는 빌런이 아니라 ‘매드맨’이다.”

4월 10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대선후보 경선 참여를 선언했다. 당대표 시절이던 12월 4일 그는 국민의힘 의원 18명과 함께 윤석열이 선포한 계엄 해제에 앞장섰다. 그는 불법 계엄 해제의 공로자다.
그러나 윤석열 측 입장에서 보면 그는 ‘배신자’다. 대선후보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배신자’ 프레임은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그가 내놓은 출마 선언문을 보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계엄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윤석열을 거론하지 않는다. 계엄 불법성에 대한 언급도 없다. 대신 ‘비상계엄’과 ‘30번의 탄핵’을 묶어서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였나 할 정도로 국민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냈다”고 주장했다. 야당도 묶어서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출마 선언문에서 윤석열은 딱 두 번 언급된다. ‘윤석열 정부의 좋은 정책’이라는 제목 아래 “윤석열 정부의 모든 정책이 저평가를 받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당 경선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를 ‘배신자’로 공격하는 윤석열 지지자들을 달래야 하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이완규 헌법재판관 지명도 윤석열 뜻?
조기 대선에서부터 내년 지방선거까지 앞으로의 국민의힘 정치 일정에서 윤석열의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 ‘곧 사그라들 것’이라고 답한 정치평론가·정치권 인사는 거의 없다.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관계는 사실상 끝난다”고 답한 사람은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이 거의 유일하다. 엄 소장의 말이다.
“일각에서는 어게인 윤(Again Yoon)이라고 말하는데 속된 말로 미치광이를 어떻게 지지하나. 그게 가능하려면 한남동 관저 앞이나 헌법재판소가 탄핵 이후 지금까지 수만 명 시위대에 둘러싸여 있어야 하는데 보수층은 손절했다. 윤석열의 강성지지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집회를 열곤 했지만, 이미 기가 꺾였다. 윤석열의 ‘그림자’가 국민의힘 경선에 영향을 미치려면 컷오프 정도 수준일 것이다. 4월 중순이 넘어가면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본격 절연할 것이다. 지도부 구성이나 선대위를 꾸리는 것은 새로 선출된 대선주자의 몫이다. 어떤 선거든 다 그랬다.”

윤석열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일찌감치 그는 당원 구조와 룰을 보면 이미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정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김문수인데 하나 더 변수가 생겼다고 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다.
“경선 룰을 보면 김문수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만약 한덕수가 탄핵당하면 국민의힘 경선에 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뜻은 뭐냐, 윤석열·김건희의 요구다. 국민의힘 경선은 윤석열·김건희의 ‘아바타전’이다. 한덕수가 나선다면 김문수는 한덕수 지지 선언을 하고 빠질 것이다. 과거 당대표 경선도 마찬가지였다. 한동훈이든 안철수든 윤석열·김건희의 의중을 벗어난 사람은 100% 후보가 될 수 없는 구조다.”
왜 한덕수가 다크호스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는 지난 탄핵 과정에서 한덕수 탄핵소추안을 헌재가 먼저 처리한 과정에 단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덕수 탄핵 건을 먼저 처리하고, 헌재 평의는 8:0이 될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시 헌재 측으로부터 얻은 첩보다. 윤석열이 구속 취소된 뒤 후임 헌재재판관 둘을 갑자기 인선했다. 총리실은 인선 기능이 없다. 용산 측에서 움직인 것이 헌재까지 전달된 것이다. 그래서 선제적으로 한덕수를 기각시켜 빼놓은 것이다.”
신 전 교수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윤석열은 구속 취소 직후부터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헌재재판관 임명을 추진했다는 뜻이다. 4월 8일 한덕수 총리의 지명은 탄핵인용 전 윤석열의 ‘유훈’을 따른 것이며, 이튿날 국회에서 “하루 전에야 지명 사실을 알았다”는 이완규 법제처장의 진술은 거짓말이 된다. 차후 규명해야 할 일이다. 계속되는 그의 말이다.
“대선후보 선출까지 윤석열·김건희의 뜻대로 된다는 뜻은 대선 직후 비대위 체제를 청산하고 치러질 당대표 선거까지 가져간다는 뜻이다. 이 당은 가치나 철학·원칙이 체화된 내재적인 정신세계가 없는 당이 됐다. 애당초 그런 게 있었다면 내란에 동조하지도 않았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은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난립해 있지만, 국민의힘은 대선 경선이 아니라 전당대회 예선전이라고 보면 된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난 4·2 재보궐 거제시장의 경우를 보면 대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 등의 선거 결과와 비교해보면 득표율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국민의힘은 3만여 명이 빠졌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아닌 것이다. 6·3 대선도 그렇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오지 않으면서 정권 교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