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기업서 품질보증 담당한 30대, 백혈병 진단받고 투병 중 숨져
유족 "발암성 물질 노출 환경서 근무" vs 사측 "안전한 곳서 작업"
"입사 4년 10개월 만에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발암성 화학물질이 노출된 위험한 실험실에서 일했는데, 회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지난 17일 끝내 숨진 박모(31)씨의 아내 서모씨가 22일 눈물마저 마른 탓인지 남편의 투병 과정을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박씨는 2019년 1월 충남에 위치한 대기업인 A화학 회사에 입사했다. 품질시스템팀에서 PVC QA(폴리염화비닐 품질보증)나 TPEE QA(열가소성 폴리에스테르 품질보증) 업무를 맡았는데 벤젠이나 클로로포름, 에탄올 등 1급 발암물질이 상시 취급되는 고위험 현장이었다는 게 서씨의 설명이다.
서씨는 "입사 당시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남편은 입사 이후 간 수치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며 "2023년 10월 열이 심하게 나 병원에 갔다가 백혈구 수치가 높아 골수검사를 했고, 이후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은 혈액이나 골수 속에 종양세포(백혈병 세포)가 출현하는 질병이다.
박씨는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 등을 시도했으나 병이 완화되지 않았다.
이에 서씨는 지난해 12월 근로복지공단에 남편의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흡연도 하지 않았던 남편인 만큼 발암성 화학 물질에 노출돼 백혈병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0.5ppm 이상 농도의 벤젠에 노출된 후 6개월 이상 지나 발생한 급성골수성백혈병의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보고 있다.
서씨는 "남편은 이식 합병증으로 기억력이 심하게 손상되는 상황이었는데도, 근로복지공단의 역학조사가 늦어져 산재 인정도 받지 못한 상태"라며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남편은 조혈모세포이식 후 발병한 이식편대숙주질환(GVHD)으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박씨가 숨지자 A화학 관계자들이 그의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유족은 백혈병 발병에 대한 조사 및 자녀장학금 등을 요구했으나 사측이 소극적 태도를 보여 남편의 발인을 미루고 있다.
서씨는 "남편은 초등생과 유치원생 자녀 3명을 키우는 가장이었다. 백혈병이 발병되지 않았다면 그 누구보다 착실하게 회사에 다녔을 사람"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회사에 재직한다면 받았을 혜택을 요구한 것인데도 회사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남편의 죽음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질병사'로 남기를 바라는 것 같다"며 "위험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남편의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작업 현장과 백혈병의 상관관계가 밝혀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회사 측은 "박씨는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했다"며 유족의 주장을 반박했다.
A화학 관계자는 "박씨는 실험실에서 근무했고, 클로로포름과 에탄올 모두 배기장치가 설치된 곳에서 (이들 물질을) 취급했다"며 "또 벤젠 등 조혈기계 검사 항목에 해당하는 물질을 취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며 "앞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조사에도 투명하고 성실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