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나라’에 대한 어떤 가설

2025-02-17

트럼프의 두 번째 취임식에서 가장 기이했던 장면은 선서였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성경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이례적인 모습에 논란은 일었지만, 법에 명시된 건 아니라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보수 개신교계의 넉넉한 지지를 받았던 그는 유난히 친기독교적인 발언을 자주 했던 게 사실이다. 트럼프는 취임식에서도 무슨 선지자인 양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 하나의 가족, 하나님 아래 하나 된 영광스러운 국가입니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성경에 손을 올리는 절차는 빼먹은 걸까.

취임 이후 그의 광풍과도 같은 행보를 보면서 나름대로 그 이유에 대한 가설을 세워본다. 트럼프는 온갖 행정명령을 쏟아내면서 이번 2기 행정부의 통치 원리가 ‘낙인찍기’임을 분명히 했다. ‘하나님 아래 하나의 국민’임을 천명했던 그가 마치 쓰레기 분류하듯 ‘부적절한’ 미국인들을 솎아내는 중이다. 실제 충성심과 효율성을 잣대로 국제개발처(USAID)를 비롯한 연방 공무원들이 대대적으로 잘려나가는데, 이 해고 작업이 ‘청소’에 비유된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은 ‘가짜 뉴스’ 낙인을 찍고 백악관 출입을 저지하기도 한다.

출생과 동시에 주어지던 자녀 시민권도 이젠 트럼프가 인증한 ‘법률상 미국인’이 아니라면 언감생심이다. 하물며 불법 이민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 당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에 따라 직업을 갖게 된 이들은 이유 불문, 그 전문성을 의심받게 됐다. 트럼프가 취임식에서 “우리는 하나의 국민(We are one people)”이라고 말했을 때의 ‘우리’는 아무리 봐도 전체 미국인을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트럼프는 특정 이념과 인종, 성적 취향 등에 기반해 ‘정제된’ 우리를 상정하고, 이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을 낙인찍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미국을 재조립하는 중이다. 이 무자비한 통치 방식과 그가 말했던 ‘하나님 아래 하나 된 국가’와의 괴리감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구약성서 이사야서 11장은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있는’ 나라를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묘사한다. 계급이든 인종이든 강자든 약자든 어떤 이유로도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 어쩌면 그는 구약성서의 이 대목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성경이 제시한 통치 원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트럼프의 나라’를 떠올리면서 그는 차마 성경에 손을 올리지 못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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