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의 전쟁영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전직 군지휘관이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아조우 연대의 참모장이자 연대장 대행을 맡고 있다가 올해 2월 사임한 보흐단 크로테비치(32) 중령은 이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전략적 상상력이 부족한데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전장 상황에 맞지 않는 구소련식 상명하달을 고수해 병사들의 목숨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최전방 지휘관의 자율적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상부에서 우크라이나군 전체의 모든 움직임을 일일이 통제하려 드는 탓에 적시에 전술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게 크로테비치의 주장이다.
그는 "총사령관이 있는 사령부와 고위 지휘부에서 시간이 갈수록 범죄의 경계선상에 있는 명령들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양심상 이행하고 따를 수 없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참모본부는 교대근무를 마친 (전방) 병사들에게 후방에서 쉴 수 없도록 했다. (대신에) 전선에서 50m 거리를 유지하며 쉬라고 명령했다"면서 "이건 지금 진행 중인 전쟁의 원칙을 이해 못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거의 범죄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규탄했다.
수십㎞ 바깥의 목표물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드론과 활공폭탄이 쓰이면서 병사들이 적의 공격에 노출되는 최전선의 범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는데 겨우 50m 뒤로 물러나 쉬라는 건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에 병사들을 노출시키는 것이란 의미다.
크로테비치는 "그들은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목표물을 때리는 새로운 수단들을 인정하길 거부한다"면서 병사 개개인뿐 아니라 각 부대 지휘부도 이로 인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까지 자신이 이끌었던 아조우 연대도 물러나지 말고 무작정 버티라는 고위 지휘부의 명령 때문에 심각한 위험에 노출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군의 공세에 밀려 전선을 물리길 요청했지만 "그들은 명확히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우리는 (연대본부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털어놨다.
크로테비치는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러시아 측 방어선을 깨뜨린 건 작년 8월 시작됐던 러시아 쿠르스크주에 대한 기습 공격 외엔 없고, 병력을 물려야 할 때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인 포크로우스크 등에서 러시아군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올가미를 조여오는데도 후퇴 명령을 내리지 않아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다.
그는 "시르스키는 고도의 과학과 전술을 적용하려 시도하지 않는다"면서 "그의 역할은 두 가지 뿐이다. 적이 공격해 오면 더 많은 사람을 던져넣고, 적이 압도적이면 철수시키면서 사람들의 목숨을 걱정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로테비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2014년 극우성향 민병대였던 아조우 연대에 입대했고, 2022년 초에는 재차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에 포위된 채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80일간 결사적 투쟁을 벌였다.
결국 러시아군에 생포된 크로테비치는 포로교환으로 귀국한 뒤 군에 복귀했으나 자신이 보기에 병사들의 생명을 경시한다고 보이는 다른 지휘관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다가 최근 사임후 퇴역했다.
크로테비치는 러시아, 벨라루스, 북한 등 적대 국가의 정보를 다루는 민간 분석기관을 설립할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현지에선 그가 정계에 입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본인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작년 2월 전임자인 발레리 잘루즈니가 경질되면서 총사령관이 된 시르스키는 개전초 수도 키이우로 진격하는 러시아군을 막아내고 반격의 기틀을 잡은 명장이지만 군 안팎에선 '도살자'로 불리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 왔다.
인해전술을 펼치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동부전선 최대 격전지였던 바흐무트를 끝까지 사수하려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가 우크라이나 토박이가 아니라 러시아 출신이란 점도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울산종합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