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AI 시대, 규제의 틀 넘어서 진흥에 박차 가해야

2025-03-16

인공지능(AI)이 산업 전반을 혁신하는 가운데, 전 세계가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의 입법·정책당국도 최근 '인공지능 기본법'을 마련하며 나름의 대응책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이 법과 정책을 설계하느냐다. 과도한 규제 일변도는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AI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자동차 산업과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성공 경험이 보여주듯, 국내외 사업자와의 협력, 그리고 정부의 과감한 진흥 정책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주요 국가의 AI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한국 정부 AI 예산은 약 1조8000억원 규모로, 미국(약 29조원), 중국(약 39조원) 대비 크게 부족하다. 민간투자 또한 미국(672억달러)의 2% 정도 수준에 머무른다. 글로벌 AI 경쟁이 격화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규제 중심'이 아닌 '진흥 중심'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여러 연구에서 산업 진흥기에는 규제가 강한 국가보다 약하거나 없는 국가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높다는 연구도 진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은 AI 선도국가답게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인재·기술·기업을 한 데 모으고 있다. 중국도 정부 주도로 AI 도시, AI 특구를 조성하고 있으며, 막대한 보조금 정책을 지속 중이다. 두 국가의 관계가 AI 패권을 두고 골이 깊어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럽연합(EU)은 '인공지능법(AI Act)' 초안을 준비하며 규제 선도를 노렸지만, 최근 들어 “과도한 규제는 혁신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일부 조항을 보완하고 시행을 유예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일본 또한 AI 산업에 대한 세금 혜택과 보조금 지급에 적극적이다. 해외 빅테크 기업들이 일본에 데이터 센터를 짓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동시에 자국 기업의 AI 소프트웨어(SW) 개발 및 연구개발(R&D)을 지원한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일찍이 “글로벌 AI 빅테크를 끌어들여 자국 인프라를 확충하고, 자국 기업도 함께 육성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있다.

AI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 제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펀딩 및 세제 혜택 확대다. 우리나라도 반도체, 배터리 등에 대규모 세액 공제를 적용하고 있으나, AI 분야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정부 R&D 예산을 과감히 늘리고 민간투자를 유도할 세제 인센티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행이 여야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비슷한 정책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시급히 안을 마련해야한다.

둘째, 글로벌 사업자와의 협력이다. 국내 AI 산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서는 빅테크 기업과의 데이터·기술 교류가 필수적이다. 국내 거점 데이터 센터, AI 공동연구 센터 등에 대한 보조금 및 행정 지원을 늘려 AI 인프라 자체를 국내에 구축토록 해야 한다. 글로벌 사업자가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한국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수단을 강구해야한다.

셋째, 직접·간접 투자다. AI 분야는 R&D 속도가 빠르고, 초기 투자 비용이 크다. 중소·벤처 기업이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 펀드를 조성하고, 민간 투자기관과의 매칭 펀드를 활성화해야 한다. 자칫 뛰어난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지 못해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다만 정부의 직접 투자를 늘리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민간 투자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간접 지원 정책의 마련이 요구된다.

과거 자동차 및 반도체 산업에서 보여준 성공의 열쇠는 대담한 투자와 세계 시장을 겨냥한 개방, 그리고 최소한의 규제였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기술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이미 미국, 중국 등 선도 플레이어와의 격차가 상당하기에, 대한민국이 할 일은 더더욱 '혁신을 가속화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규제를 통한 윤리·책임 확보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그 틀이 기업의 손발을 묶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산업계, 학계, 정부가 함께 거버넌스를 마련해,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면서도 AI 발전이 활성화되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규제를 통해 산업을 끌고 가겠다”는 사고방식은 이미 다른 나라 사례에서도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법의 구체적 시행령과 후속 정책들이 진정한 의미의 '혁신 진흥'을 담아내길 기대한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 yhkim1981@sunmoon.ac.kr

〈필자〉선문대 경영학과 교수이자 오픈루트 연구위원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분야 전문가다. 미디어와 경영 관련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 정책 관련 각종 연구반과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하며, 미디어 산업을 보는 폭넓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 산업에 사회·경제 효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미디어 컨설팅과 연구를 수행하는 오픈루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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