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동 감독(71)의 차기작 <가능한 사랑>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진다. 극장 개봉이 우선 선택지였으나, 투자사를 구하지 못하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행을 택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조차 상업성이라는 잣대 앞에 투자를 받지 못한다는 건, 향후 한국 영화계에 다양한 영화를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암시하는 음울한 징조다.
넷플릭스는 지난 5일 <가능한 사랑> 제작 확정 소식을 알렸다. 극과 극의 삶을 살아온 두 부부의 세계가 얽히며 일상에 균열이 퍼지는 이야기다. 배우 전도연과 설경구, 조인성과 조여정이 각각 부부로 출연한다. 이 감독의 <버닝>(2018) 이후 7년만의 신작 소식이다.
영화는 당초 극장 개봉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국내 투자처를 구하지 못했다. <가능한 사랑>을 비롯해 <버닝> 등 이 감독의 영화를 제작해 온 파인하우스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지난 5일 문자로 “(이번 영화는) 작품의 완성도는 높더라도 상업성을 대놓고 밀어붙이는 영화는 아니”라며 “국내 투자자들이 관심은 있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영화 투자 체력이 거의 바닥이어서 아주 상업적인 장르 영화조차도 투자를 못 받는 시장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가능한 사랑>의 작품성을 높게 본 넷플릭스는 처음부터 투자 제안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시리즈 강자이지만 영화 ‘후발주자’의 꼬리표를 떼지 못한 넷플릭스는 유명 영화 감독을 영입해 오리지널 영화의 작품성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2018), 데이빗 핀처 감독의 <맹크>(2020) 등이 대표적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한국의 작가주의 감독에게 오래 전부터 눈독 들여왔던 넷플릭스에게 이창동 감독은 영입 1순위 중 한 명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더 아쉬운 것은 <가능한 사랑>이 영화진흥위원회가 올해 신설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 다군(제작비 60억원 이상 80억원 미만) 지원 선정작으로 뽑혔음에도, 신청을 자진 취하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투자 조건이 더 좋고, 극장개봉 시 흥행실패 우려가 없는 상황 등이 고려됐을 법 하다. 다만 한국 영화 감독과 제작자들이 영진위의 지원까지 포기하고, 넷플릭스 등으로 달려가는 현상이 더 가속화될 수 있고, 이는 한국영화 시장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화계에는 “올 것이 왔다”는 탄식이 나온다. 감독이 아무리 극장에 대한 애정이 있어도 ‘극장 영화’를 만들기 힘든 상황은 앞으로 ‘관객이 들 만한 상업 영화’가 아니면 제작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낳는다. 영화 관계자 A씨는 “상업성과 작품성을 고려해 A, B, C, D···,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투자·배급사가 이젠 거의 없다”며 “투자에 대한 판단도 점점 신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영화계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멀티플렉스 3사가 <옥자> 보이콧에 나설 정도로 넷플릭스 영화를 꺼려했던 영화계에선 “넷플릭스도 하나의 투자처”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OTT로 영화를 소비하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됐다. 적어도 극장 개봉 영화가 OTT에 공개되기 전 충분한 유예 기간(홀드백)을 보장하는 등 넷플릭스 차원에서 한국 극장가와의 공생을 고민해달라는 ‘을의 부탁’이 이제는 주류를 이룬다.
오동진 평론가는 “더 이상 영화 산업은 5200만의 내수 시장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상황”이라며 “해외 공동 제작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되 국내 시장을 유지하려면 장편 극 영화를 대체로 20억원에 제작하는 일본처럼 제작비 단가를 낮춰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