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노동자도 쓸 수 있는 상병수당은?

2025-01-31

지난 23일 국회 토론회 개최…불안정노동자 권리 보장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논의

‘불안정 노동자들의 아프면 쉴 권리를 위한 과제’를 주제로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토론회가 개최됐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제 지역구인 안양에서 2기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 상병수당이라는 제도는 우리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러 사례를 통해 더 설득력 있게 3기 시범사업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 같아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같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런 자리가 무척 소중하다”며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분들의 뜻을 모아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한 이 중요한 시기에 한 사람의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분명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눈치 보여서”…아프다는 말도 못 해

먼저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이 발표자로 나와 불안정노동의 현실을 증언했다.

건설노동에 종사하는 오동현 씨는 “혼자 무거운 자재를 들다 철근 사이로 넘어져 산재처리해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 후 음료수까지 돌려가며 다시 일하고 싶다고 했던 작업자에게 산재처리한 사람은 현장에서 일 못 하는 거 알지 않냐라는 말이 돌아왔고, 결국 그 동료는 현장을 떠나게 되었다”며 “다쳤다, 아프다, 쉬겠다는 표현을 눈치 보지 말고 말할 수 있는 현장이 안전한 현장일 것”이라고 호소했다.

학교급식노동자인 강민주 씨는 “급식실 환경이 위험하고, 노동강도가 높아 아프거나 다치면 치료받고 쉬어야 하는데 심각한 결원 사태로 대체자를 구하지 못해 아픈 몸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방학 중에는 치료를 받을 시간이 있지만 월급이 나오지 않아서, 치료비 마련을 위해 알바를 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택배노동자인 이용덕 씨는 “택배 노동자들은 우스개 소리로 암에 걸리지 않거나 다리가 완전히 부러지지 않으면 일해야 한다라는 말을 한다”며 “아파서 배송 실적이 떨어지면, 원청, 대리점 소장에게 밉보여 바로 잘릴 수밖에 없는 것이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상병수당제도 시범사업…절차적 장벽 높아

또한 이번 토론회를 위해 『불안정노동자들은 왜 아파도 쉬지 못하나』를 주제로 한 연구가 진행됐으며, 해당 연구는 25개 업종, 29명의 노동자, 1명의 이주 노동자 지원 활동가를 인터뷰해 불안정노동자들의 처우 실태와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어떤 제도 개선이 필요한지 짚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진우 운영위원은 주요 OECD 국가들의 상병급여 보장 설계 사례를 7가지로 구분해 정리‧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 위원은 “모범사례로 제도대상에 있어 임시직·파트타임 노동자나 자영업자라 하더라도 정규직 임금노동자와 동일하게 상병급여를 제공하는 경우, 자격기준은 보험가입자라면 누구나 기간과 조건에 관계없이 상병급여를 급여해주는 사례가 있었다”며 “핀란드의 경우 근로활동불가 질병 기준을 3일 초과로 적용하고, 자영업자도 대기기간이 1일이었다. 독일의 경우 3년 이내 78주 동안 근로능력상실 전 소득의 70%를 보장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상임활동가는 30명을 노동자를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아프면 쉴 권리’가 고용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점을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정규직 및 대기업 노동자는 비교적 권리를 보장받는 반면,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등은 병가나 산재 보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고 있다”며 “불안정 노동자는 병가를 보장받는 경우가 적고, 대체인력 부족, 고용불안 등으로 병가를 꺼리게 되며, 산재의 경우도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 증명이 까다롭고, 사업주의 압력으로 신청이 제한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일을 쉬면 소득이 없어 생계에 위협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병가 사용에 대한 부정적 시선 및 조직문화로 인해 노동자들이 병가 사용을 주저하고 있고, 시행 중인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고령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제외되고, 소득 증명과 같은 절차적 장벽 존재해 문제가 많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과 개선 방안으로 김 활동가는 “더 폭넓게 산재를 인정하고, 노동자들이 쉽게 신청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상병수당 및 유급병가 제도화의 경우 이주노동자, 프리랜서까지 모든 노동자를 포괄해야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급여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작은 사업장이나 호출 노동자들을 위한 대체인력 지원 시스템 도입이 절실하며, 상병수당과 병가 사용에 따른 불이익과 해고를 금지하고, 이를 강력히 규제하는 법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패널 토론에서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프면 쉬지 못하는 현실이 더욱 부각 됐고, 특히 불안정노동자들이 생계와 건강 사이에서 극심한 압박을 받았다”면서 “정부의 '아프면 쉬기' 방역 수칙은 현실에서 실천이 불가능했고, 특히 불안정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했는데,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사례 등은 노동자들이 생계 때문에 증상이 있어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의 건강보험은 의료비 부담을 덜어줄 뿐, 아픈 노동자들에게 소득을 보장하지 못해 사실상 ‘진료비 할인 제도’에 불과하다”며 “상병수당 도입에는 연간 약 8천억~1.5조 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건강보험 재정의 극히 일부에 해당하나 정부는 제도 도입을 미루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전 국장은 “노동자들과 시민의 연대를 통해 ‘아프면 쉴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상병수당제도팀 강민구 팀장은 “시범사업을 통해 오늘 토론회에서 언급된 여러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상병수당 도입 과정에서는 기존 제도와의 관계 설정 및 연계 등 고려할 지점이 많고, 내부적으로 본 사업안을 검토하는 단계이기에 유관 이해관계자나 전문가와의 협의 과정에서 충분히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정책과 한진선 과장은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약정 병가제도의 혜택이 대기업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은 실태조사 등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며 “제도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확대된 공휴일, 대체공휴일 제도 및 주52시간제가 들어오면서 연차, 유급휴가, 공휴일이 늘어난 상황 등과 여러 제도와의 연계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지도 여러 쟁점이 많아 고민이 많지만, 관계부처 및 전문가들과 논의해서 좋은 제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플로어에서는 “아프면 쉴 권리 보장에 대한 문제는 복지부와 노동부를 기본으로 지자체 유급병가제도 도입까지 고려하면 행안부 등을 포함해 총리실 산하 TF를 구성하여 실행해 나가는 추진력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참여 테이블 마련 등을 촉구했다.

다른 참석자는 “사각지대 중심으로 제도설계를 하면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재원이 갈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엄격히 증명해야 하고, 제외대상이 많아지며, 절차가 복잡해질수록 불안정 노동자들은 훨씬 더 제외되는 사례들을 봐왔고, 그런 점에서 보편성에 입각해 설계를 해야 불안정 노동자들도 충분히 제도 안에 포섭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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