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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 12월 9일 가톨릭농민회 소속 회원 5명이 광주 미국문화원 건물에 불을 질렀다. 이들은 5·18 진상 규명과 전두환 세력을 비호한 미국의 책임을 주장했다. 역사는 이 사건이 1980년대에 분출했던 반미 운동의 서막을 알렸다고 기록한다.
1982년 3월 18일 문부식·김현장 등 대학생들이 부산 미국문화원을 방화했다. 시위대는 "미국은 한국에서 물러가라"며 반미 구호를 외쳤다. 당시 문화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동아대 재학생이 화재에 희생됐다. 1985년 5월 23일 친북 성향 운동권 단체 삼민투(三民鬪)의 주도로 서울 5개 대학 학생 73명이 서울 미국문화원을 점거했다. 이들은 "광주 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고 외치며 나흘간 농성했다. 당시 사건 관련자 중에 박선원·김민석·정청래 등은 지금 여의도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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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난 15일 A씨(42)가 서울 명동의 주한 중국대사관에 난입을 시도했다. 미국 마블 코믹스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상태였다. 건조물 침입 미수 혐의의 현행범으로 체포된 뒤 풀려났으나, 20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출입문 유리를 깨고 내부에 진입하려다 다시 체포돼 결국 구속됐다.
80년대 극한 반미, 요즘 반중 확산
정치인·종교인·유튜브가 부추겨
감정적 대응 자제, 선넘지 말아야
A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연수원에서 중국인 99명이 체포됐다"고 보도한 인터넷 매체 기사의 제보자라 주장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일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반중 감정이 확산하는 가운데 발생한 사건이다.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18일 김석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나 "한국의 일부 세력이 루머를 퍼뜨리고 반중 감정을 조장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입장을 이례적으로 표명했다.
반미와 반중의 상징적 두 장면의 시차는 40년이 넘는다. 그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와 외교·역학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엔 폭력을 동반한 반미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됐다면, 요즘 반미는 사실상 잠복했다고 할 정도로 조용하다. 한 좌파 정당이 주한 미국대사관 주변에서 '내란 배후 미군 철수' 간판을 내걸고 1인 시위를 해도 행인들이 힐끔 쳐다볼 뿐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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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중국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하는 추세다. 1992년 수교 초기에는 가짜 제품과 열악한 위생 등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지만,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덜했다. 그런데 2016년 사드(THAAD) 사태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부정적 여론이 비등했다. 미국 퓨(Pew)리서치센터가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처음 조사한 2002년엔 31%였는데, 그동안 등락을 보이더니 2024년엔 71%를 기록했다.
최근 반중 여론이 유달리 급속도로 확산한 데는 여러 요인이 거론된다. 수교 초기부터 중국은 블루오션 기회의 시장으로 여겨졌으나 2023년에는 사상 처음 대중 무역적자(180억3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의 첨단기술 추격과 쓰나미 수준의 덤핑 수출에 따른 한국 기업의 피해가 속출한다. 간첩죄 대상 확대를 위한 형법 개정이 친중 성향 야당의 반대로 불발된 것도 영향을 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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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탄핵심판 와중에 반중 여론이 혐중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 특정 종교 단체, 돈벌이를 노린 유튜브 방송과 일부 인터넷 매체들이 반중 여론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은 중국이 한국의 영토·역사·기술·문화 등을 빼앗으려 하고, 심지어 여론과 선거 조작을 위한 '하이브리드 전쟁'을 진행 중이라고 의심한다. 진위를 가려서 국가안보 전략 차원에서 대응하면 될 일이다.
트럼프 2기 들어 미·중 전략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그 중간에서 힘들어도 대한민국 국익 극대화를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반미든 반중이든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은 국익에 역행할 수 있다. 반중도 반미도 선을 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