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고추 모종 하나 남지 않아”…탈농 고민

2025-04-15

역대 최악의 산불로 삶의 터전과 생계 수단을 완전히 잃어버린 농민들이 탈농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1만3223㎡(4000평) 규모의 고추농사를 짓는 이용택씨(70·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는 이번 화마로 자가 육묘장에서 키우던 모종 10만포기를 모두 잃었다. 의성군에서 일부 모종을 지원해준다지만 농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씨는 “모종은 물론 농기계와 건조기 등이 몽땅 불탔는데, 올해 농사는 시작도 못해보고 이렇게 됐으니 정말 허탈하고 막막하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것도 없는 신세가 여실히 느껴져 눈물이 난다”고 했다.

경북 의성·영양·안동 등 고추 주산지의 시·군에선 이씨처럼 피해가 발생한 농가를 대상으로 빠르게 모종을 공급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모종을 심더라도 농기계가 없는 탓에 방제 등 영농도 문제다. 그만큼 경영비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3만포기 정도 지원해준다고는 하지만 영농비용도 만만찮은 데다 건조기가 모두 타버려 수확해도 문제”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씨처럼 각종 농기계와 모종, 씨앗 등이 전소된 농가들은 탈농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씨는 “일흔이라는 나이에 다시 수천만원을 빚내서 농사를 시작한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면서 “이 참에 농사를 접고 읍내로 나갈까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번 산불로 인한 농기계와 농업 기반시설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10일 기준 경북도에 따르면 농기계 1만883대와 시설하우스 783동, 저온창고 등 부대시설 2411동이 불탔다.

기종별로는 관리기 1794대, 건조기 1786대, 트랙터 334대, 경운기 1354대 등 농업에 꼭 필요한 기계가 대부분이다. 관수·양수 시설, 관정 등 피해도 심각하다. 심지어 지역에선 호미와 낫 등 기초 농기구의 품귀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농사 밑천이 모두 불타버렸다.

이들 농기계를 구매하고 다시 농업기반을 다지려면 최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목돈이 든다. 농기계와 각종 시설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없다면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고추농가 한호기씨(68·영양군 석보면 화매리)는 “고추 모종 2만여포기뿐 아니라 육묘용 비닐하우스와 농기계도 모두 불타버렸다”며 “시설과 농기계를 다시 장만하려면 수천만원이 들 텐데 정말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류시국 구계2리 이장은 “집도 농사 밑천도 모두 전소된 농가가 많은데, 주민 대부분이 70∼80대 고령”이라면서 “이들이 이같이 큰돈을 마련해 각종 농기계를 구입하고, 농업시설을 새로 설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일부 주민은 농업을 접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고, 실제로 79세인 한 이웃은 평생 일군 과수원을 결국 내놨다”고 말했다.

의성·영양=유건연 기자 sower@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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