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부처님오신날을 보내며

2025-05-09

우리나라에서 한 해 두 번은 종교에 대해 관심이 환기된다. 한창 봄날의 부처님오신날과 한 해 끝자락의 크리스마스다. 필자는 종교가 없었는데 조계종에서 세운 대학교에 20년 가까이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자가 되었다. 남편은 개신교 모태신앙을 갖고 있어, 토요일에는 법회에 가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는 생활을 한 적도 있다. 인구 비중으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종교를 오래 함께 경험하면서 어설프지만 나름의 종교관도 갖게 되었다.

종교 없는 사람 전체 인구의 51%

괴로움의 주 원인은 탐욕과 집착

국내외서 혼란 끊임없이 이어져

할 수 있는 일 없을 땐 마음 비워야

필자에게 여전히 가장 어려운 질문은 ‘종교를 가져야 할까’이다. 사실 이에 대해 17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이 비교적 명쾌한 답을 내놨다. 신을 믿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파스칼에 따르면 신을 믿는 사람은 만약 신이 있다면 구원을 얻을 것이고 신이 없다고 하더라도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므로 잃을 것이 없다. 하지만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신이 없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신이 있다면 사후에 몹시 곤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손익을 따지는 접근이 경제학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 꽤나 설득력이 있었지만, 막상 신을 믿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 적 없는 대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도, 믿는 것이 이롭기 때문에 믿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너무 지쳐서, 절대자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의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때가 왔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을 만한 작은 기적 한 조각이면 완전히 귀의할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오지 않았다. 당시에 존경하던 선배 교수님께 기적을 경험하면 신을 믿게 될 것 같다고 고민 상담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분은 신을 믿으면 기적을 맞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이 부러웠지만 결국 믿음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아직까지 기적이라고 느끼는 순간을 겪지 못했다. 어쩌면 매일 다가오는 작은 깨달음과 소소한 행복이 신의 선물일 수 있겠으나 그렇게 확신할 만한 명분을 갖지 못한 상태이다.

2013년에 『구원 확률 높이기 프로젝트』라는 책이 나왔다. 위르겐 슈미더라는 독일의 스포츠 기자이자 작가가 4년여 동안 세계의 여러 종교를 체험하고 위트 넘치게 쓴 책이다. ‘신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많은 종교를 유쾌하고 공감되도록 다루어서 10년 넘게 기억하고 좋아하고 있다. 슈미더는 예를 들어 ‘힌두교의 여러 신 중 하나가 진짜라면, 기독교 신자들 역시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며 종교를 진지하게 고르는 관점으로 체험기를 썼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종교를 고를 여유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리서치의 ‘2024년 종교인구 현황’에 따르면 51%가 ‘종교 없음’으로 답하고 있다. 종교가 있는 경우도 능동적으로 선택한 비율은 높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필자처럼 직장을 통해 신자가 된 것은 특이한 인연일 수 있다. 어쩌면 불교가 지혜를 쌓기 위해 정진하고, 깨달음을 얻어 자비로운 마음으로 널리 나누자고 설파하는 것이 학자의 자세와 맞아떨어져서 더 편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 한계에 대한 내적 갈등이 있었다. 과연 출가를 하지 않고도 궁극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만약 깨달음을 얻지 못할 터라면 계속 정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다. 큰 반향이 있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스님이 된 주인공의 친구에게 옛 연인이 찾아가 절규하는 대사가 필자의 고민을 위로하는 것 같아 마음에 남았다. “너 여기서 득도 못해. 나 같은 지랄 맞은 여편네랑 살아봐야 득도하지. 이런 산골에 처박혀서 득도 못해. 내려와.”

불교의 진리 고집멸도는 괴로움의 원인으로 탐욕과 갈망 등이 결합한 집착을 지목했다. 출가는 집착할 거리를 끊어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출가하는 것이 인간사의 순리는 아닐 것 같다. 생활인으로서,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은 남편과 아이 둘을 키우면서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랑하되 바라는 바를 두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가족에게도, 사회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도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그것 하나 붙잡기로 했다.

국내외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는 더구나 마음을 비워야 맞다. 마음은 고요하게 비우고 소중한 가족을 맑게 대하는 5월을 보내기로 바라본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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