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2024년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해 초 22대 총선이 진행됐고 하반기에는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미국을 포함해 50여 국가에서 선거가 진행됐고, 유럽과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는 지속된 한 해였다. 올해 말미에는 계엄·탄핵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이슈 속에서 올 한해 우리 산업계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FETV 편집국이 짚어보았다. <편집자주>
[FETV=양대규 기자]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주도로 리밸런싱(사업재편)에 집중한 한해였다.
지난해 그룹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7조7300억원의 적자를 냈으며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은 배터리 사업도 적자의 늪에 빠졌다. 미래 먹거리로 생각한 친환경 분야에서도 좀처럼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의 증가로 경기 침체와 고금리 현상은 심해졌고 결국 투자금 회수도 못하며 SK그룹은 위기의 상황에 몰린 셈이다.
이에 지난해 10월 최태원 회장은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서든데스(돌연사)'를 언급하며 SK그룹의 구조적 개선, 리밸런싱을 요구했다.
먼저 최 회장은 지난해 말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에게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을 맡기며 리밸런싱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올 한해 SK그룹은 계열사 간 중복 사업을 없애고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는 등 사업 구조조정 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SK가 공시한 올해 3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SK의 연결대상회사수는 연초 716개에서 56개 줄어 660개로 집계됐다. 솔루티온 등 13개사는 흡수 합병됐으며 스튜디오돌핀 등 15개사는 청산됐다. SK렌터카, 솔라오션, 우리화인켐 등 49개사는 매각됐다. 총 77개의 회사가 제외됐다. 20개의 기업을 신규 설립하고 1개의 기업을 신규 취득하면서 3분기까지 56개의 연결대상회사가 줄었다.
종속회사 수가 줄어든 건 2018년 이후 처음이다. 2018년 말 260개였던 종속회사 수는 2020년 말 325개, 2021년 454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SK그룹 내에서 선제 투자가 강조되면서 SK와 주요 계열사 간 인수합병(M&A), 지분 투자가 활발해진 탓이다. 지난해 말 기준 주요 대기업집단의 종속회사는 현대차그룹 151개 LG그룹 30개, 롯데그룹 88개, 포스코그룹 192개 순이다.
SK그룹 리밸런싱의 대표적인 예가 에너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이다. 양사는 7월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산 간 합병 안건을 의결했다. 이후 임시주총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어 합병안이 통과했다. 양사의 합병으로 자산 100조원, 매출 88조원 규모 아시아·태평양지역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이 지난 11월 1일 공식 출범했다.
또한 SK온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올해 합병 절차를 밟아 SK온 트레이딩인터내셔널로 출범했다. 향후 1년 내로 SK엔텀과 합병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업황이 불안한 정유·석유화학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SK온의 역량 강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리밸런싱을 위한 매각도 활발했다. 올해 11월 기준 SK그룹은 ▲SK매직의 가전사업 영업권을 경동나비엔에 430억원 ▲SK어스원의 페루 LNG 지분 20%를 미국 미드오션 에너지(MidOcean Energy)에 3500억원 ▲SK스퀘어의 크래프톤 지분 2.2%를 시간외매매(블록딜)로 약 2700억원 ▲SK네트웍스의 SK렌터카 지분 100%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8200억원 ▲SK에코플랜트의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업 어센스 엘리먼츠(Ascend Elements) 지분 7.7%를 SKS 프라이빗에쿼티에 1316억원에 ▲SK동남아투자법인의 원커머스 지분 7.1%를 베트남 마산그룹에 2700억원에 매각했다. 총 1조5700억원 규모다.
이후에도 SK 그룹은 6조9800억원치의 매각을 추가로 진행 중이다. ▲SK는 SK스페셜티를 한앤컴퍼니에 약 4조3000억원 ▲SK이노베이션은 SKIET를 사모펀드 등에 약 2조원 ▲SKC는 SK엔펄스를 사모펀드 등에 약 4000억원 ▲SKC는 SK넥실리스 박막 사업을 어펄마캐피탈에 950억원 ▲SK Investment Vina II Pte. Ltd.는 베트남 빈그룹 지분을 사모펀드 등에 약 1조1800억원 규모로 매각을 체결하기 위해 각각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의 리밸런싱에 대한 평가는 우선 긍정적이다. 직접적인 성과가 바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SK그룹은 연간 총 2조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 3분기까지는 누적 18조2000억원의 이익을 냈다. SK그룹 20개 상장사의 부채비율은 92.6%로 지난해 말 105.1% 대비 12.5%p 낮아졌다.
SK그룹의 순차입금도 지난해 말 84조2000억 원에서 올해 9월 말에는 76조2000억 원으로 9.5% 감소했다.
전문가들도 SK가 리밸런싱을 통해 성공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K그룹은 중복되는 투자·사업으로 인한 비효율을 최소화하고 적절한 통폐합을 통해 핵심 사업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고자 올해 들어 전면적인 리밸런싱 작업에 돌입했다"며 "계획대로 계열회사 및 자산 매각이 완료되면 풍부한 현금 유입으로 지주회사 SK 및 관련 계열회사들의 재무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최관순 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도 "2024~2026년 ROE(자기자본이익률) 8%(PBR 0.7배), 2027년 ROE 10%(PBR 1배) 목표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비핵심 자산 매각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라며 "SK 이노베이션과 SKE&S 합병, SK 스페셜티 매각 추진 등 이미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은 내년에도 리밸런싱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바탕으로 AI(인공지능)와 바이오 등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달 열린 'SK AI 서밋 2024'에서 "(리밸런싱으로) 줄이는 건 줄이는 대로 노력을 할 필요가 있으며, 줄인 부분을 통해 AI 투자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리밸런싱과 AI 투자가 다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해달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지난 5일 단행한 인사에서 SK텔레콤 주도로 그룹 전반의 AI 역량 결집을 위한 AI R&D 센터를 신설했다. 신규 임원의 33%를 AI 반도체 사업을 주도할 SK하이닉스에서 배출했다. SK는 미래 성장 사업 발굴을 위해 'AI 혁신'과 '성장 지원' 담당 조직도 신설했다.
SK그룹 CEO들은 지난달 열린 CEO 세미나에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운영개선의 속도를 높이고, 재무구조 개선을 넘어 AI 등을 활용한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기로 뜻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