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보단 절망이, 기쁜 얘기보단 나쁜 소식이 더 많았습니다. 올해 스타트업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보시죠.
팁스와 R&D, 갑작스런 지원 삭감 논란
새해 벽두부터 한 여름까지, 스타트업 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 중 하나는 ‘팁스(TIPS, 창업성장) 지원 논란’입니다. 올 1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팁스 선발 기업의 지원금 20%를 감액하겠다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2주 만에 “원래대로 지원급 지급” 계획을 밝힌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논란은 7월까지 이어졌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약속한대로 팁스 지원금을 차질없이 100% 지급했다고 했지만, 스타트업 일각에서는 정부가 약속을 안 지켜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원성을 높이는 일이 벌어진 거죠. [관련기사: 팁스는 왜 자꾸 논란이 되나]
올해 기술 지원 예산과 관련해서는 계속해 잡음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을 명목상 16/6%나 대폭 삭감하면서, 국내 주요한 연구개발단체나 개인의 여러 연구가 큰 차질을 빚었죠. 지난 4월 있었던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의 후보들은 “연구개발(R&D) 비용의 조속한 원상복구”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는데요. 과학기술은 한 번 맥을 자르면 다시 살리기 어렵다는 것을, 지금 세상을 바꾸는 혁신 기술에서 뒤처지면 변화의 속도에 따라 붙기 힘들다는 것을, 지금은 성과가 더뎌 보이는 여러 기술 연구가 언젠가 파괴력을 지닌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정부와 지원 기관들은 잘 알아야겠습니다. 인재들이 다 떠나고, 연구의 맥이 끊겨 버리고 나서 그때서야 뒤늦게 돈을 부으면 무엇하겠습니까?
꽁꽁 얼어붙은 투자 시장에 계엄이 뿌려졌다
투자 시장은 작년에도 어려웠고, 올해도 그랬는데, 내년에도 마찬가지, 혹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올해, 더브이씨가 7월 발표했던 보고서에서는 “2024년 상반기 한국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대상 투자 건수(포스트 IPO 투자 제외)는 497건으로 전년동기 대비 32% 감소했다”는 내용이 공개됐었는데요, 투자금액 역시 “2조646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9.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혀 어려운 시장 상황을 알게 했습니다.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기저에는 ‘글로벌 고금리 기조’가 깔려 있죠. 금리가 높아지면서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했고, 투자자들 역시 돈을 쓰는데 신중해지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가 너무 고평가된 것이고 사실은 이게 정상”이라는 판단도 있고요.
또, 지난해 기업가치를 부풀리는 식으로 ‘뻥튀기 상장’을 했다는 논란이 있던 파두의 영향도 기업공개(IPO) 시장에는 여전히 악재입니다(금융감독원은 파두와 파두의 상장주관증권사인 NH투자증권 관련자에 대한 수사 결과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한 기소 의견으로 지난 20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기술 스타트업 전반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됐고, IPO 심사 역시 강화되면서 여러 스타트업이 상장 계획을 미루거나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는 엑시트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와 투자 심리 위축에 또 다시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을 만들어냈죠.
이 와중에 초유의 사태, 계엄이 선포되고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불안한 정세에 돈줄은 더 막히는 분위기입니다. 환율은 오르고 국장은 바닥을 쳤죠.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자의 말이 상황을 요약합니다.
“계엄으로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투자 심리는 당연히 위축된다. 국내 상장주식에도 투자를 안 하는데 누가 비상장에 투자하겠나? 비상장 스타트업은 금융투자 생태계의 최약체다. 엑시트 방법이 막혔으니 스타트업과 벤처투자사 모두 망할 상황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나 K 콘텐츠 기반으로 하는 사업들은 국가 브랜드가 이미지인데, 이들 역시 큰 타격을 받는다.”
심각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름의 긍정적 견해도 물론 있습니다. 빠르게 정국이 안정화된다면, 불확실성이 개선되어 투자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죠.
통과 되지 않고 사장된 스타트업 관련 법
규제 패러다임의 변화는 아무리 얘기해도 달라지지 않는 분위깁니다. “안 되는 것만 빼고는 다 하게 하겠다”는 네거티브 규제로 변화를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스타트업 업계가 강하게 요구하는 규제 개선은 올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핵심으로 꼽는 법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스타트업을 지원하자는 데 뜻을 모은 국회의원들이 만든 스타트업 연구모임이 있는데, 그 이름이 ‘유니콘팜’입니다. 21대 국회의 유니콘팜에서 6개의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중 단 하나도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법안이 있었는지는, 바로 옆 기사를 참조해주세요![관련기사: 22대 국회, 나를 기억해줘요]
22대 국회 들어서도 상황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스타트업 관련 법안을 논의하자고 하기에는 지금 정국이…. 게다가, 그나마 가장 쉽게 논의가 풀리지 않을까 싶었던 ‘변호사법 개정안’도, 지금 법조계 움직임을 보면 상황이 썩 좋진 않을 것이라는 게 들리는 소문입니다. 로톡과 같은 법률 플랫폼에 대한 변호사 업계의 강한 견제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연대보증 문제 수면 위로, ‘신한캐피탈’ 논란
신한캐피탈이 올 1월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간 프롭테크 스타트업 어반베이스의 창업자 하진우 대표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도 스타트업 업계의 큰 이슈였습니다. 요지는 “창업자 개인이 연복리 15%로 투자원금의 두배가 넘는 금액인 총 12억원의 투자금을 반환하라“는 것이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풋옵션은 투자 대상이 의무를 위반했을 때, 투자금 회수를 할 수 있도록 넣은 조항을 말합니다. 통상, 투자사가 풋옵션을 실행할 때는 이해관계인(창업자 등 임원)이 계약서에 적힌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계약시 허위 내용을 포함했거나, 배임, 횡령 등으로 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한 경우인데요. 어반베이스의 경우 계약서에 풋옵션 발동 조건으로 ‘상환이익이 없는 경우’라는 조항까지 넣었습니다. 즉,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지면 이해관계인이 이를 갚아야 하는데, 이에 불복할 시 대출보다도 큰 이자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 생겨나는 거죠.
스타트업 투자는 통상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표현합니다. 투자한 모든 돈을 원금 회수하고, 이자를 모두 받아 이득을 챙기는 형태의 투자는 스타트업과는 거리가 멉니다. 창업자가 신의성실하게 경영을 했고, 그 과정에서 폐업하게 될 경우 투자자도 같이 손실을 감수합니다. 대신, 이 스타트업이 크게 되어 큰 이득을 내면 투자자 역시 큰 보상을 얻죠. 그래서 스타트업 생태계에선 창업자와 투자자 간 깊은 이해와 소통, 신뢰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스타트업 생태계가 어려워지자 투자금을 상환하려는 일부 투자사들에서 무리하게 풋옵션 조건을 넣고, 이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사건을 취재하던 <바이라인네트워크>에 최재욱 법무법인 디엘지 파트너 변호사는 “풋옵션이 일부러 경영을 태만하게 하거나 투자금만 받아 챙기려는 악직절인 창업자를 방지해 투자사를 보호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면, 풋옵션을 계약서에 넣을 때 악질적인 경우에만 이를 발동할 수 있도록 분명한 제한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또, 계약서를 만들 때 풋옵션 설정을 매우 신중하게 하도록 하거나 혹은 풋옵션 자체를 악용할 수 있는 조항은 미리 삭제할 수 있도록 벤처투자 표준 계약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고요.
“투자에 대한 회수를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사회라면 창업자는 잠재적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므로 누구도 창업에 나서지 않으려 할 것이고, 한국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의 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은 힘이 세다, 흑자전환 한 스타트업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제 할일을 해 나가면서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 있습니다. 투자금이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스타트업은 몇년 전과는 달라 “이익을 내면서 견실히 성장하라”는 주문을 받는 상황이죠. 0창업자들의 입장이 “기술과 아이디어가 좋다면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시장과 고객의 수요를 파악해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변화하는 흐름도 느낄 수 있었던 한 해였죠. 그래서 다행히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흑자 전환으로 희망찬 소식을 전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토스가 있습니다. 2023년 3분기에 첫 분기 흑자를 냈고, 올 3분기에도 그 기조를 이어갔죠. 뱅크샐러드는 올 11월, 월 기준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며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중고거래 모델에 새로운 획을 그은 당근은 올 상반기, 창사 이래 첫 흑자를 발표했고 이는 이커머스의 대어 컬리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올 연말, 큰 투자를 받아 유니콘에 등극한 에이블리도 지난해부터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고요.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는 야놀자 역시 올 2분기 흑자 전환을 밝혔습니다. 물론, 상장이나 투자를 겨냥해 “만들어낸 흑자”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 회사들이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니까요.
한 군데 더, 올해 진짜 어려운 한 해를 보냈던 토종 OTT 왓챠도 흑자 전환 소식을 알렸는데요. 물론, 뼈아픈 구조조정을 겪은 대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