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 독단, 야망'…트럼프는 왜 병리주의 리더인가

2025-02-21

불통, 독단, 야망

스티브 테일러 지음

신예용 옮김

21세기북스

현재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첫 임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심리학자 존 가트너가 경고한 말이다.

폴란드 심리학자 안제이 로바체브스키는 심각한 사이코패스나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병리적 소수파가 정상적인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를 통제하는 정부 체제를 일컬어 병리주의라고 정의했다. 영국 심리학자 스티브 테일러는 『불통, 독단, 야망』에서 트럼프 대통령 같은 병리주의자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같은 다른 국가의 병리주의 리더들에게 열렬히 호의를 베풀고 비판을 삼가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지은이 테일러 교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도 병리국가라고 분류했다.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스트, 마키아벨리스트적 특징은 ‘어둠의 3요소’로 꼽힌다. 지은이는 이런 요소를 갖춘 사람에게 ‘초단절형 인간’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극심한 단절은 정신 이상과 나르시시즘의 근본적 원인이며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공통적인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병리주의자들은 바로 이런 초단절형 인간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이 살았던 20세기는 병리주의시대였다. 최근의 추정에 따르면 20세기 100년 동안 ‘인간의 결정에 따라 죽거나 죽도록 방치된’ 사람이 2억3100만 명이나 된다.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가진 초단절형 인간이 사회로 풀려난 사이코패스 죄수들처럼 쏟아져 나온 결과다.

책을 읽다보면 유사 이래 인간은 초단절형 병리주의자 리더들 밑에서 줄곧 신음해 온 것 같다. 고대 로마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스탈린이나 히틀러처럼 사이코패스적 특성이 있는 황제의 통치를 받았을 가능성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같은 로마 황제들로부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 파라과이의 스트로에스네르, 아르헨티나의 비델라, 칠레의 피노체트, 이라크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우간다의 아민, 적도기니의 응게마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병리주의자들의 폭정을 열거했다.

실제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나 나르시시스트는 1% 미만이다. 이런 통계를 볼 때 극소수의 초단절형 인간들이 그토록 쉽게 권력을 쟁취했다는 게 놀랍다. 특히 정치는 초단절형 인간들의 텃밭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처럼 무자비하고 불안정한 개인이 불빛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권력에 끌린다.

병리주의가 리더 개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권력을 차지한 초단절형 인간이 다른 초단절형 인간을 끌어당기는 것이 병리주의의 기본 법칙 중 하나였다. 히틀러가 끌어들인 측근 요제프 괴벨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하인리히 힘러, 한스 프랑크 같은 인물도 심각한 사이코패스였다. 이들은 매우 신속하게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시민의 자유를 억압했다. 반대 세력의 원천을 봉쇄하고 정부와 언론을 완전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반면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은 살해되거나 밀려났으며 대부분은 겁에 질려 우려를 표명하지도 못했다. 원래는 심리적으로 정상이던 평범한 수백만 명의 독일인이 점차 히틀러가 저지른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에 많게든 적게든 연루되고 말았다.

한국은 초단절형 인간들이 정치권력을 쟁취하기에 좋은 풍토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추종하는 또 다른 초단절형 인간들이 줄을 서 있고 정상적인 대중도 ‘어둠의 3요소’ 리더에 쉽게 자발적으로 영합하는 경향이 강하다. 병리주의 국가가 되는 게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경고다. 지금의 계엄, 탄핵 사태 등 광범위한 정치 혼란의 주역 중에서도 초단절형 인간들이 포함돼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책은 우리 정치를, 우리 사회를 비춰보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다. 다수 국민이 자유와 평화, 안정을 누리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인가는 결국 현명한 국민, 연결형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이들이 힘을 합쳐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스트, 마키아벨리스트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 준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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