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AI와 예술의 ‘윈윈’, 인간다움서 찾아야

2025-03-21

언젠가부터 여러 문학 공모전 요강에 과거에는 없었던 주의사항 하나가 자주 보인다. 챗GPT 등 AI를 활용한 당선작은 입상을 취소한다는 경고 문구다. 한쪽에선 ‘AI와 함께하는 소설 쓰기’ ‘AI의 도움으로 4주 만에 10화 분량의 웹소설 완성하기’ ‘챗GPT를 활용한 시 쓰기 수업’ 등 AI를 전면에 내세운 창작 수업과 관련 서적이 늘고 있다. 한 프레임에 담긴 서로 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세상의 과도기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AI로 인해 예술과 기술 경계 모호

소설도 몇 초 만에 뚝딱 만들어내

예술과 AI의 공존은 피할 수 없어

창작을 위한 자료 정리 등에 도움

지금까지 예술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어서 AI로 대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앞으로도 그러할진 의문이다. 지난해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박참새 시인은 첫 시집 ‘정신머리’에 챗GPT와 협업한 시 ‘Defense’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같은 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쿠단 리에 작가도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을 쓸 때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이젠 AI를 활용한 문학이 독특한 시도라는 수준을 넘어 예술의 영역을 넘보는 차원에 이르렀다.

현재진행형이면서 조금은 식상한 화두를 되새김질해보겠다. AI를 활용한 창작을 창작으로 볼 수 있을까. 창의력 확장을 위한 AI의 활용은 대체로 창작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창작에 필요한 자료 정리와 분석은 번거로운 작업인데, AI는 이를 단시간에 탁월하게 정리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런 활용은 인간이 창작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우수한 결과물을 내는 편리한 도구를 두고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태도는 미래의 발전을 가로막고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AI에 사실상 외주를 맡기는 창작은 어떨까. 예를 들어 AI에게 형제의 음모에 희생당한 재벌집 막내아들이 이세계(異世界)에 드래곤으로 환생했다가 험난한 모험 끝에 현실로 돌아와 복수에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의 기획안을 만들어달라고 지시했다고 치자. 실제로 이 질문을 챗GPT에 던져보니 드래곤 ‘아그나르’로 이세계에 환생한 ‘대한그룹의 막내아들 강지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불사조의 역린’ 기획안이 단 몇 초 만에 만들어졌다. 읽어보니 나름대로 재미는 있는데, 기시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창작을 창작으로 볼 수 있을까. 찬반 의견이 갈릴 듯하다. 그렇다면 질문을 틀어보겠다. 이런 기획안으로 쓴 소설을 돈 주고 사서 읽을 독자가 과연 있겠는가. 그렇다는 답변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 지갑을 열지 않을 테다. 이 소설에는 인간다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우사인 볼트는 지난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m를 9.58초에 주파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세계인을 열광시켰다. 당시 볼트는 최고 시속 44.72㎞로 달렸다. 하지만 세상에는 볼트보다 빨리 뛰는 동물이 많다. 치타의 최고 시속은 120㎞로 볼트보다 3배 가까이 빠르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고양이의 최고 시속도 볼트보다 빠른 48㎞다. 그런데 왜 세계인은 치타나 고양이가 아니라 볼트가 뛰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걸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욱 높은 단계에 도달하려는 의지와 노력에서 감동하기 때문 아닐까. 나는 그 의지와 노력을 인간다움으로 부르고 싶다.

챗GPT와 딥시크 같은 딥 러닝 기반 AI는 인간이 지금까지 남겨 온 방대하고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데이터를 수집·저장·처리·분석해 빅데이터를 만들어 학습한다. 즉 AI의 한계는 지금까지의 인간이다. 큰 노력 없이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고 AI에 뻔한 질문을 던지면, AI는 빅데이터 속에 녹아 있는 관련 정보와 맥락을 뻔한 방식으로 풀어내 ‘불사조의 역린’처럼 뻔한 결과물을 내놓을 뿐이다.

뻔하지 않은 질문은 자기만의 콘텐트를 확보하려는 의지와 노력, 즉 인간다움을 발휘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런 인간다움을 반복해 학습한 AI는 지금보다 깊이 있는 결과물을 내놓으며 진화할 테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창의력 또한 더 넓은 지평으로 향하리라고 기대한다. AI와 예술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피할 수 없다면 조화롭게 공존할 지혜를 찾아야 한다. 인간다움은 AI와 예술이 윈윈(Win-Win)하는 열쇠가 될 거라고 믿는다.

정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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