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미국 유통업체 타겟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프로그램의 종료를 선언했다. 타겟은 2016년 대형 유통업체 최초로 트랜스젠더 고객과 직원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논란을 빚었다. 2020년부터는 매년 흑인 직원을 20%씩 늘리고 6월 성 소수자 축제 기간에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 소수자 전반(queer) 혹은 성 정체성을 갈등하는 사람(questioning)을 포괄해 성 소수자를 통칭)를 옹호하는 과감한 디자인의 제품 컬렉션을 출시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양성 실태 조사를 중단하고 소수자 관련 상품 판매도 축소한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타겟마저 DEI에 등을 돌렸다’고 전한다.
소속감이 삶의 만족에 직접 영향
기업이 외로움·소외감 해결 나서
고객 간 교류와 사회적 연결까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폐기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 급진적, 낭비적인 DEI 정책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으로 제한하고, 정부 조직과 직원 평가에도 DEI를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 기업들의 노선 변경도 빨라졌다. 메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이민자,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을 제한하는 규정을 완화했고, 아마존은 기업 소개 자료에서 유색인종, LGBTQ+의 권리에 관한 내용을 삭제했다. 펩시, 도리토스 등을 보유한 식품업체 펩시코는 DEI 프로그램을 축소했고 최고다양성책임자(CDO) 자리를 없앴다.
DEI와 거리두기가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2020년부터 흑인 직원 채용을 30% 이상 확대해왔던 구글은 2023년 상반기에는 전년 대비 44% 축소했다. 테슬라와 메타는 2024년 DEI 지출을 2022년 대비 각각 84%, 53% 삭감했다. S&P500 기업 중 임원 평가에서 DEI 지표를 사용하는 비중도 2023년 75%에서 2024년 66%로 줄었다. 소수자 우대 정책의 적절성이나 효과성에 대한 찬반이 엇갈렸고,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상품이나 광고를 선보인 기업들은 보수주의자의 불매운동에 부딪혀 주가와 매출 급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 속에 주목받는 키워드 중 하나는 소속감(sense of belonging)이다. 타겟은 DEI 프로그램 폐기와 함께 고객과 직원의 소속감 강화를 새로운 목표로 제시했다. 특정 소수 집단의 비중 확대에 치우치기보다 기업과 사회를 대표하는 구성원들이 서로 연결되어 결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다. DEI가 구성원의 다양성 수준을 높이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조직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면, 소속감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일원이란 확신과 만족감이 들 때 형성되는 상위 차원의 개념이다.
연결됐지만 동시에 고립된 현대인
소속감은 조직문화 차원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마케팅에서도 고객의 연결감, 유대감 향상은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인식된다. 전 세계 절반 이상의 성인이 깊은 외로움을 겪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 커졌다. 셰리 터클(Sherry Turkle) MIT 교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었지만 동시에 또 고립되었다’고 말한다. 외로움, 소외감이 기후변화와 빈곤, 비만에 상응하는 문제로 대두되자 기업의 역할은 판매를 넘어 고객 간 만남과 교류, 사회적 연결 지원으로 확장됐다.
스타벅스의 ‘낙엽 쓸어 담는 사람들’

스타벅스에는 낙엽을 쓸어 담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리프 레이커스 소사이어티(Leaf Rakers Society)’라는 비밀스러운 고객 커뮤니티가 있다. 2018년 가을 한정 메뉴인 호박향 라떼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가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년 가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교 모임에 가깝다. 비공개로 운영되며 자생적으로 성장한 커뮤니티에서 4만 명 이상의 멤버가 지금까지 공유한 대화는 수백만 건이 넘는다. 스타벅스에게는 고객의 생각을 읽고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멕시칸 패스트푸드업체 타코벨은 팬 고객들이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내는 이벤트를 연다. 2019년에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팝업 호텔 ‘더벨(The Bell)’에서 고객들이 수영장, 칵테일 바 등을 이용하며 어울리도록 했다. 1박에 300달러 정도 비용이 드는 유료 이벤트였지만, 2분 만에 예약이 만료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올 8월에는 은퇴 후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고급 리조트를 팝업 형태로 오픈할 예정이다. 고객들이 낙천적인 분위기 속에서 멕시칸 푸드와 다양한 편의시설을 즐기며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미리 맛보도록 한다는 취지다.

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라파(Rapha)도 고객의 연결을 지원하는 커뮤니티로 유명하다. 라파는 1만 8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된 글로벌 고객 커뮤니티 라파 사이클링 클럽(Rapha Cycling Club)을 운영한다. 전 세계 22개 도시별 라이딩 루트를 개발하고, 그룹 라이딩 행사를 개최한다. 런던, 도쿄, 서울 등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는 매장을 넘어 라이더들의 만남과 교제 장소로 통한다. 자전거 제조사가 아닌 의류 브랜드가 모임을 주도하는 것은 옷을 만들고 파는 데 그치지 않고 바람직한 사이클링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러 기업이 DEI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상황 속에서도 애플, 코스트코 등은 기존 정책을 고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적 문화를 지향하는 큰 흐름은 멈추지 않겠지만, 정량적 기준에만 집착하는 형식적 정책이 실효성을 잃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 인종의 모델을 구색 갖추기로 등장시킨 광고도 피상적인 토크니즘(tokenism·형식주의)으로 비난받는다. 외로움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시대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소속감은 삶의 만족과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좋은 브랜드의 조건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고객을 연결하고 교류하게 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순화 동덕여대·국제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