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원으로 동계 야영 준비

백패킹 값비싼 장비가 정답인가?
텐트 200만 원, 침낭 150만 원, 배낭 100만 원. 언제부턴가 수백만 원은 당연하게 써야 겨울 백패킹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20여 년 전 겨울 야영 때는 좁은 텐트 속에서 낡은 스펀지 매트리스 깔고 붙어 앉아 몇 시간씩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당시 능선 야영 터에 올라서면, 국산 반포텐트와 에코로바 텐트가 3분의 2 이상이었다. 장비보다는 사람이 주主가 되는 인간적인 시간이었다. 사회에서는 경쟁 구도 속에서 치열하게 살았지만, 산에 들어서는 순수한 자연과 교감하며 마음 맞는 사람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야영이었다.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장비의 즐거움도 야영의 일부분이지만, 과시적인 면이 지나치게 커졌다. 국내에 온갖 유명 장비가 들어오고 평균 장비 가격은 높아졌지만, 산에서 사람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가난하다 하여, 자연의 감동을 못 느끼지 않는다.
한겨울 1,000만 원 장비로 하는 야영도 있고, 그 중간 정도도 있고, 최저 비용으로 하는 야영도 있다. 언제부턴가 야영에 이 정도 돈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겼으나, 야영의 본질은 과시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고가 장비에 대한 욕심과 겉만 화려한 보여주기식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중고장비 구입기
종로5가 장비점 골목과 프랑스 저가 멀티숍인 데카트론을 방문했으나, 최저가 제품을 선택해도 60만~80만 원이 기본이었다. 장비를 빌려주는 곳도 있었으나 1회 대여료가 7만~10만 원으로 기획 의도와는 맞지 않았다. 결국 중고장비를 구입하는 것으로 현실적인 기준을 낮췄다.
10만 원 장비 겨울 야영 출장 날짜를 정해 놓고, 3일 전부터 중고장비를 검색했다. 겨울 백패킹 특성상 몇 가지 구입 기준을 정했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을 것, 안전에 위협이 될 정도로 제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것, 가장 저렴하고 정상 사용 가능한 제품을 구할 것이다.
많은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와 앱 중에서 네이버 카페인 초캠장터가 가장 유용했다. 회원 수가 많은 중고나라 카페와 당근마켓 앱도 유용하지만, 백패킹 장비 매물 수가 적었다. 가령 텐트를 검색하면 부피 크고 무거운 그늘막 텐트와 오토캠핑용 텐트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초캠장터는 캠핑 마니아들이 중고장비를 거래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게시판 카테고리에 ‘백패킹용 중고용품’ 대분류 속에 배낭, 텐트/타프 같은 게시판이 세분화되어 있어 중고 매물 수가 압도적이었다.
발품을 파는 게 귀찮은 면이 있지만, 최저가 야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지하철로 1시간 넘게 걸리는 노원역으로 가서 텐트를 4만 원에 구입하고, 이화여대 부근에서 구스다운 3,000g 침낭을 3만 원에 구입했다. 70리터 배낭은 보라매역 부근에서 4만 원에 구입. 매트리스는 당근마켓으로 얇은 삼계절용 발포매트리스 2개를 2,000원과 3,000원에 샀다. 총 금액 11만5,000원으로 목표했던 10만 원을 초과했으나, 더 이상 가격을 낮추면 겨울 산에서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만5,000원 초과했지만 물가를 감안하면, 현실적인 최저가였다.

장비점 골목 방문, 맨땅에 헤딩
최저비용으로 겨울 야영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종로5가 장비점 골목으로 나섰다. 요즘 물가를 감안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10만 원으로 야영 장비 마련하기’라는 기획이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당일 산행에 익숙한 등산인의 첫 겨울 야영으로 등산화와 등산복 같은 산행장비는 있다고 가정하고, ‘텐트, 침낭, 매트리스, 대형 배낭’ 4개 품목을 구입하기로 했다. 크고 작은 10여 군데의 등산장비점을 방문했으나, 결론부터 밝히자면 불가능했다.
텐트 가장 저렴한 1인용 텐트는 국산 브랜드 쿤타의 조디악텐트(1.8kg)였다. 할인해서 10만 원에 구입 가능하며,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 최적화된 삼계절용으로 추천했다. 동방레저에서 추천한 미국 브랜드인 니모 아톰1인용 텐트는 30% 할인해서 29만9,000원.

침낭 마운틴기어 양정우 점장은 “헝가리 덕다운(솜털 깃털 비율 8:2)을 사용한 아웃도어브릿지 12만 원 침낭이 가장 저렴한 제품”이라고 했다. 보온재로 솜을 넣은 더 저렴한 침낭도 있지만 겨울 산 능선에 올라가서 야영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조언했다. 다른 장비점에서는 최소 30만 원 이상은 써야 겨울 구스다운(거위털) 침낭을 구입할 수 있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시장 안쪽의 군용장비 골목에 자리한 천지산악 박현수 사장은 7만9,000원에 구스다운 1,300g 침낭을 팔고 있다고 권했다. 중국 거위털을 써서 국내 공장에서 제작한 침낭으로 무게는 1.9kg. 더 저렴한 것은 15온스 솜을 사용한 4만 원 침낭이 있었다.
매트리스 마운틴기어에서 발포 매트리스(스펀지형)를 할인가 1만8,000원에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겨울에 쓰기에는 얇아서 냉기로 인해 중간중간 잠을 깰 것이 분명했다. 두꺼운 동계용 발포 매트리스는 4만 원대였다. 스노라인 자충식 에어매트리스(1.1kg)가 그나마 에어매트리스 중에선 7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대형 배낭 쿤타 80리터 배낭이 25만 원. 국산 서미트 75리터 배낭이 27만 원이었다. 70리터보다 작은 배낭은 동계용으로 사용하기엔 작아서 무리가 있었다.

11만5,000원으로 구입한 장비
중국 제조 구스다운 침낭
중국 공장에서 만든 구스다운 침낭을 초캠장터에서 중고로 구입했다. 보통의 동계용 구스다운 침낭이 1,300g인 걸 감안하면, 중국 제품이라 해도 구스다운 3,000g이라는 판매자의 글에 반신반의했다. 실물을 직접 보니 압축했음에도 50cm가 넘는 크기와 3.5kg 무게에 납득했다. 솜털이 부풀어 오르는 척도인 필파워는 약했으나 털이 워낙 많아 보온성이 우수했다. 침낭을 얼굴에 덮어도 보온성은 유지되면서 숨 쉬기 불편하지 않았다. 필파워 높은 동계용 브랜드 침낭에 비하면 투박하고, 무겁고, 불편한 면이 있으나, 영하 10℃ 이하의 능선에서 사용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3만 원에 구입.

한솔 매트리스·버팔로 매트리스
당근마켓에서 발포 매트리스를 2,000원과 3,000원에 각각 구입했다. 하나만 깔고 사용하기에는 겨울산의 냉기를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버팔로 매트리스는 사용감이 거의 없는 새 제품 수준이었고, 한솔은 사용감이 많았으나 야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발포 매트리스의 장점은 가볍고, 막 쓰기 좋다는 것. 에어매트리스는 공기를 넣고, 빼고, 말아서 넣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반해 빠르고 편리하며 가볍다. 단점은 부피가 커서 배낭에 매달고 산행할 때 나뭇가지나 돌에 긁혀 기동력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두 개를 겹쳐서 바닥에 깔았고, 냉기 올라오는 현상 없이 새벽에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총 5,000원에 구입.

중국 네이처하이크 1인용 텐트 스파이더1
무게 1.9kg의 1인용 텐트이며 더블월에 전실 공간이 있어, 혼자서는 넉넉한 야영을 할 수 있다. 텐트 내부 길이 2m, 폭 0.9m로 혼자서 밤을 지내기에 불편함 없는 공간이 나왔다. 더블월 구조에 내부 이너텐트는 메시라 바람이 잘 통하고 외부 플라이는 내수압 3,000mm 소재로 하룻밤 지내기에 큰 불편은 없었다. 다만 통풍성이 탁월해 한겨울보다는 나머지 계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약 침낭이 부실하다면 이 텐트를 겨울에 사용하는 건 피해야 한다.
장점은 자립형이라 설치와 해체가 쉽고 이너텐트와 플라이 사이의 전실 공간이 있어 배낭이나 등산화를 두기 좋다.
판매자 성격이 꼼꼼하고 깔끔해 제품에 하자가 없는 A급인데다, 바닥에 까는 그라운드시트와 펙을 별도로 구입한 새 제품을 챙겨줘 고마웠다.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 3~4년 전 모델이며 당시 신품 구입 가격은 해외 배송료 포함 19만~20만 원인데 4만 원에 구입했다.

K2 70리터 배낭
저렴하게 구입하기 가장 어려운 장비였다. 대형 배낭 특성상 야영 산행에 쓰려면 기본 수준 이상의 품질이 보장돼야 했기에, 10만 원 이하로 구입하기엔 가격대가 높았다. 전문 배낭 브랜드는 아니지만, 미국 유명 배낭 브랜드의 디자인과 닮아 있어 활용도가 나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내구성과 수납성은 좋지만, 등판과 힙벨트를 통한 하중 분배 능력이 떨어져 운행이 편하진 않았다. 배낭에 대한 전문성은 없지만 5시간 이하 산행에는 쓸 만하다. 4만 원에 구입.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