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VVIP 컬쳐: 유튜브 구독자 1천 1백만명을 둔 래퍼가 24발 총격당하다

2024-11-27

1. 국가대표를 내쫓고, 개를 산책시키다

인도 수도인 뉴델리에서 공무원 전체 서열 3위에 해당하는 행정부시장으로 멀쩡하게 잘 근무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인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인 북서부의 라다크(Ladakh)로 발령이 났다. 그의 아내도 고위 공무원인데, 북동부의 아루나찰 프라데시로 발령이 났다. 말단 공무원도 아니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엄청난 세력을 뿜뿜하는 인도의 고위 공무원 부부가 왜 갑자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직으로 발령 났을까? 바로 '개(dog)'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뉴델리 한 복판에 있는 공립 스타디움에서 잘 훈련하고 있던 인도 국가대표 선수들을 우르르 내쫓고는 텅 빈 경기장에서 평화롭게 자기 개를 산책시키는 갑질을 며칠이나 반복하다가 언론에 발각되었기 때문이다.1)

뉴델리 행정부시장 산지브 키르와르(Sanjeev Khirwar)와 그의 아내가 2022년 5월 띠야그라지 스타디움(Thyagraj Stadium)에서 운동선수들을 내보낸 뒤 개와 산책하고 있다(출처-)

인도에는 속칭 ‘VVIP 컬처’라는 게 있다. 유명 정치인, 고위급 공무원, 그리고 대기업을 소유한 부호가 마치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인 양 일반 국민이 지키는 각종 규칙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행태를 말한다. 50대 초반의 뉴델리 행정부시장은 22세의 젊은 나이에 인도에서 가장 어렵다는 일반행정고시(Indian Administrative Service)를 통과하고 1994년에 공직에 입문했다. 약 100만 명이 1,000개의 자리를 놓고 겨루는 시험이니 가히 세계 최고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시험이라고 하겠다. 이런 무지막지한 시험을 그것도 젊은 나이에 ‘소년급제’한 사람의 앞날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이다. 시험에 합격한 후 보통 10년 정도를 지방정부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이 문제의 인물은 지방 근무는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상당 기간을 수도 뉴델리에 있는 요직에서 근무했다. 수도 델리의 꿀보직에서 또 다른 꿀보직으로 옮겨가고자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갖다 바치면서 두터운 인맥을 쌓은 덕분이다.

이쯤 되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주위의 사람들이 알아서 설설 기기 때문이다. 눈치만 슬쩍 주면, 경기장 관리 책임자들이 알아서 선수들을 내보내고 경기장을 문을 걸어 잠글 테니 딱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낼 것도 없다. 어디 이들 부부뿐이겠는가. 지금 이 시각에도 인도 전역에서 유명 정치인, 고위 공무원, 백만장자들이 각종 특권과 특혜를 누리며 일반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들의 위세에 눌려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 공무원 부부는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훈련 도중에 쫓겨 나가기를 반복하던 선수 중 일부가 불만을 품고 언론에 제보했다. 제보를 받은 언론사가 텅 빈 운동장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 부부의 동영상을 찍어서 인도 전역에 방송을 해버렸다. 덕분에 이들 부부는 물론 이들 부부가 소유한 개까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애완견이 되었다.

정말 코미디스러운(이라고 써놓고 '인도스러운'이라고 읽는) 상황은 그다음부터 펼쳐졌다. 뉴델리 행정부시장은 뉴델리 시장이 아닌 중앙 정부에서 임명하는 임명직이다. 즉, 뉴델리 시장이 맘대로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없는 자리다. 게다가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행정고시(IAS) 출신 공무원의 신분은 보장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인도 연방정부가 나서 언론사 보도가 이뤄진 바로 다음 날 황급히 이들 부부를 각각 인도의 북서부 끝과 북동부 끝에 있는 지역으로 발령을 내버렸다. 이름하여 'punishment posting'... 징벌적 발령이란다.2)

인도 지도

출처-<국립민속박물관>

그렇다면 이런 발령을 받게 된 그 2개의 주(state)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몇몇 의식 있는 사람은 '왜 뉴델리에서 사고 친 공무원들을 우리 지역으로 보내는가'라며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이들 2개 주의 좀 더 솔직한 속마음은 이번 사태를 분석한 토론 프로그램의 말미에 튀어나왔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루나찰 프라데시(공무원의 아내가 발령 난 지역)의 토론자가 이렇게 말했다. "IAS 출신 공무원은 최고의 인재입니다. 우리 지역에 그분이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어차피 이들 부부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물의를 일으킨 것은 금방 잊힐 테고, 이들 IAS 공무원이 가진 막강한 네트워크를 잘만 활용하면 자기네 지역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루나찰 프라데시 정부의 뜻대로 일이 굴러가지는 않았다. 남편은 2024년 11월 현재 라다크 주의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나, 아내는 2023년 여름에 면직 처리되었다.3)

2. 개가 죽인 유명래퍼

VVIP 컬처가 문제가 되자, 호들갑스러운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도 정부가 재빨리 행동에 나섰다. 그동안 관례로 주요 민간인, 가령 기업인, 대중문화 인사 등에게 제공하던 인도 경찰의 경호 서비스를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렇다. 인도에서는 유명한 민간 인사에게도 경찰들이 경호를 제공한다. 워낙에 범죄율이 높기도 하고, 이렇게 경호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이 자기 지위를 보여주기 때문에 민간 인사들도 빈번하게 자기 연줄을 이용해서 경찰들에게 경호를 요구한다. 인도 북서부의 곡창지대인 펀자브주에서만 경찰의 경호를 받는 민간 유명 인사가 대략 400명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경호가 대폭 축소된 바로 그다음 날… 사달이 벌어졌다.

인도 북서부 펀자브주에서 태어나 캐나다에 이민한 후 래퍼로 이름을 날리던 28살의 시두 무스왈라(Sidhu Moose Wala)라는 젊은이가 고향을 방문했다가 24발의 총을 맞고 숨을 거뒀다.4)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의 누적 조회수가 40억 뷰에 달하고, 1천100만 명의 유튜브 채널 가입자를 거느리며, 영국·캐나다 등의 인도 교민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서남아시아 최고 인기 래퍼가 백주에 길거리에서 갱단의 습격을 당한 터이다. 사건이 발생하던 바로 그 순간 이 래퍼에 대한 경호 수준이 대폭 낮아져 있었다고 한다. 경호 인력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것을 알아챈 갱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두 무스왈라는 주로 북미에서 활약하며

서남아를 대표하는 래퍼였다

출처-

뉴델리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부부가 인도의 서쪽과 동쪽 끝으로 발령 나자 '그럼 강아지는 누가 데려가냐?'면서 이들 부부를 비꼬던 밈(meme)을 만들어내던 인도의 네티즌들... 뉴델리의 강아지로부터 시작된 나비 효과가 엉뚱하게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래퍼가 살해되는 일로 불똥이 튀자, 이 유명 래퍼를 추모하는 글과 밈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3. 래퍼를 죽인 범인은 비슈노이 가문 출신

1998년 9월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에서 한창 영화를 찍고 있던 인도 유명 영화배우 살만 칸(Salman Khan)이 인도 가젤(chinkara)을 밀렵했다는 고발장이 경찰 당국에 제출되었다. 라자스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비슈노이(Bishnoi)' 가문은 대대로 인도 가젤을 상서로운 동물로 떠받들면서 살아왔는데 이들이 살만 칸을 고발한 것이다. 2006년 4월, 8년을 끌던 지방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살만 칸에게는 벌금 2만 5천 루피와 징역 5년형이 선고되었다.

살만 칸은 항소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6년 7월, 라자스탄 고등법원은 ‘살만 칸이 밀렵당한 동물들을 쐈다는 증거가 없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이번에는 라자스탄 주정부가 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으로 간 이 사건은 2024년 현재 26년째 재판이 진행 중이다.5) 살만 칸은 ‘그 당시 인도 가젤을 쏜 것은 내가 아니었다’라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인도 가젤(친카라)

출처-<위키피디아>

한편 살만 칸과 20년이 훌쩍 넘도록 으르렁거리고 있는 비슈노이 가문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첫째로 인도 가젤을 끔찍이도 아낀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인도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는 폭력 집단의 두목인 로렌스 비슈노이가 바로 이 가문 출신인 점이다. 1993년생인 로렌스 비슈노이는 대학에서 번듯하게 법학을 전공한 후에 폭력배로 변신한 인물이다. 인도의 김태촌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로렌스 비슈노이는 2014년 체포되어 현재 10년째 수감 생활하는 가운데 그의 조직 장악력은 흔들림이 없다. 조직의 활약상(?)도 대단하다. 밀렵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도 지난 2018년부터 로렌스 비슈노이는 뜬금없이 살만 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가문에 대한 모욕’에 보복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국민배우를 위협해서 자신 또한 유명세를 치러 보려는 속셈이다. 실제로 로렌스 비슈노이의 인기와 유명세는 갈수록 커졌다. 이들의 범죄행위 또한 갈수록 대담해졌다. 앞서 언급한 시두 무스왈라에게 24발이나 되는 총알을 쏟아부어 벌집을 만든 것도 이 조직이다. 2024년 10월 초에 마하라슈트라 주정부의 전직 장관이자 유력 정치인인 바바 시디크(Baba Siddique)를 살해한 것도 이들이다.6) 이슬람 신자인 바바 시디크가 자신과 같이 무슬림인 살만 칸과 친분을 과시하며 뒷배 노릇을 했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비슈노이는 주장했다. 1990년 이후 사라졌던 정치인에 대한 백색테러(white terror.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하여 암살·파괴 등을 수단으로 하는 테러의 일종)가 30년 만에 재현되자 2024년 가을의 뭄바이는 그야말로 벌집 쑤신 것처럼 어수선해졌다.

2023년 4월, 경찰이 뉴델리의 법원 안으로

검은색 셔츠를 입은 로렌스 비슈노이를 호송하고 있다

출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들이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곳이 인도이다. 뉴델리에 살던 고위직 공무원은 애완견 때문에 시골로 쫓겨났고, 그 여파로 펀자브에서는 유명한 래퍼가 살해되었다. 이 래퍼를 살해한 갱조직은 2024년 10월, 유명 정치인을 살해하고는 그와 친분이 있는 인도 최고의 국민 배우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애완견과 고위직 공무원, 서남아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래퍼와 인도 최악의 범죄 조직 수장, 게다가 인도 가젤을 죽였다고 의심받는 국민 배우에 이르기까지…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나, 요상하게 얽혀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코미디·누아르·액션활극은 오늘도 인도에서 계속되고 있다.

<계속>

1) ‘Stadium is emptied, athletes told to leave so that IAS officer can walk with dog’, 2022. 5. 25. The Indian Express 기사

2) ‘India ‘punishes’ bureaucrat couple after stadium dog walk furore’, Al Jazeera, 2022. 5. 27. 기사

3) ‘IAS officer Rinku Dugga who emptied Delhi stadium to walk her dog compulsorily retired by govt’, 2023. 9. 27. Hindustan Times 기사

4) ‘Indian rapper Sidhu Moose Wala was shot dead at 28’, NPR, 2022. 5. 30. 기사

5) ‘1988-2022 Salman Khan blackbuck poaching case: A recap of events spanning over two decades’, The Economic times, 2022. 3. 22. 기사

6) ‘Baba Siddique murder: Who is Lawrence Bishnoi, jailed gangster said to be involved in NCP leader’s killing?’, 2024. 10. 13. Financial Express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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