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한국 자동차 산업 70년 역사상 다사다난했던 해로 기록할 수 있다. 2024년 말의 정치적 혼란 속에 새해 벽두부터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로 우리를 압박해 왔다. 우리 정부와 자동차기업이 합심해 대응했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공을 들여 2007년에 타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물거품이 되고 우리 자동차산업은 무관세에서 25%라는 고관세에 직면해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고, 산고 끝에 우리 정부는 관세 협상을 아쉬움을 남기면서 마무리 짓고 자동차업계는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지난 여름은 무난히 덥고도 길었다. 기후변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기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책임을 다음 세대에게 전개했다면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담당 부서 환경부는 신속히 대응팀을 구성해 새로운 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수차례 의견 수렴과 공청회를 통해 새로운 감축 목표를 도출했지만, 업계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직 코로나로부터 자동차 산업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통상 압력에 이어 도전적 감축 목표가 제시돼 삼중고에 직면했다며 적극적인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는 4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한 지원 정책을 발표한뒤 시시각각 상황을 살피면서 우리 제조업 양대축 중 하나인 자동차 산업이 또다시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자동차 산업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산 전기차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수입차 시장을 잠식하면서 수입차 내수 점유율이 20%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내수 둔화에 따른 과열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 구조 개편을 추진하자 중국 자동차 업체는 인접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시장을 수출과 해외 직접투자를 통한 현지 생산·판매로 적극 공략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계 올해 해외시장 판매는 수출 670만대를 포함해 7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세계 자동차 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7년 중국은 전기차 106만대와 내연기관차 202만대를 수출, 우리를 50만대 이상 앞섰다. 우리 자동차 업계가 사상 최대 세계 시장 판매 물량을 기록했던 2016년 중국 완성차와 부품 수출은 578억달러로 한국 673억달러를 밑돌았다. 하지만, 2017년 중국 수출이 686억달러로 급증하면서 우리의 수출은 648억달러로 감소해 역전됐다. 근본 원인은 부품 수출 감소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외환위기, 금융위기와 코로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2016년까지 양적 성장을, 이후 질적 성장을 이뤘다. 국내 부품업계는 2010년대 들어 양적 성장은 이룬 반면에 수익률 저하의 문제에 직면했다. 코로나 이후 국내 부품 업계 수익률이 선진국 경쟁사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회복세를 보였으나 양극화가 심화했다.
자동차 산업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삼중 전환, 즉 전동화와 디지털화·인공지능(AI) 전환에 부응하는 업체와 그렇지 못한 업체간 경영성과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일취월장하면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 구조가 바꾸고 있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진국 완성차는 트럼프 파고보다도 정부의 적극적 지원책을 바탕으로 급성장중인 중국 자동차 산업을 경계하면서 경쟁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독일 자동차 산업은 지나친 중국 시장 의존도로 인해 구조조정에 직면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완성차는 중국과 기술과 생산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이제 글로벌 혁신 기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 변동성·불확실성과 함께 미래차 복잡성과 산업 경계의 모호성 증가라는 소위 VUCA 환경과 주요국 자동차 산업 보호.육성 정책에 따라 내년 국내외 자동차 수요를 전망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별로 미국 자동차 수요가 미국 정부의 자국산 구매 세제 혜택과 금리 하락에도 평균 판매가격이 5만달러를 넘어 개인 중위 소득을 5000달러 이상 웃돌아 수요를 억제할 전망이다. 중국 자동차 수요 증가율도 전기차 세제 혜택 축소로 인해 올해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유럽자동차 수요는 내달 10일 발표될 유럽연합(EU) 집행위 부양책에 힘입어 소폭 증가할 예상이다. 인도 승용차 수요도 5% 정도 증가하고, 대양주 수요도 소폭 증가할 전망이다. 중동 수요는 유가가 좌우하겠지만 전기차 중심으로 증가할 예상이다. 반면 남미와 동남아 수요는 정체될 전망이다. 이같이 내년 세계 자동차 수요는 주요 시장별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올해 대비 1.5% 증가할 전망이다.
파워트레인별로 올해 2000만대를 넘어선 전기차 수요가 내년 미국 수요는 주춤하더라도 중국·유럽·인도 등 다른 국가 수요 증가에 힘입어 증가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내연기관차 수요는 지속 감소하고 하이브리드차 수요도 증가하겠지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수요는 기세가 꺾일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보급에 나서고 있지만 전기차 가격 인하와 성능 향상에 따라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시장 전기차 판매가격이 평균 1만9000달러로 미국의 5만2000달러 대비 매우 낮아 내년 중국 시장에서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간 가격 격차가 사라져 전기차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중국산 전기차 해외시장 진출이다. 이미 중국 전기차는 그동안 고급 전기차 모델 수출에서 판매가격 2만1000달러 이하의 저가형 전기차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계는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활용해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1~9월 중 중국의 10대 자동차 수출 시장과 우리의 수출시장 판매 물량을 비교하면 우리는 미국 시장 의존도가 월등히 높다. 반면 중 국은 수출시장간 격차가 크지 않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한·중 완성차 10대 수출시장을 비교해 보면 중국 7위, 한국 3위 수출 시장인 호주만 중첩되고 있다. 수출 물량은 18만5000대와 11만대로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10위 수출국에 대한 수출 물량도 한국은 2만8000대인 반면 중국은 13만대다. 한국 1위 수출국인 미국에 대한 수출 물량이 9월 현재 100만대를 넘었지만 중국의 최대 수출국인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수출 물량은 34만대라는 점에서 우리의 대미 편중 수출과 수출 시장 다변화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10월 중 한국 완성차 수출은 225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2.2%가 감소했으나 중국은 전기차 수출만 90.4%가 증가한 201만대에 달했다. 내연기관차 수출은 5.1% 감소한 360만대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 상반기 완성차 내수는 정부의 부양책이 유지·강화되고 지자체 단체장 선거에 힘입어 증가하겠다. 하반기 증가율이 둔화해 2026년 전체로는 2.5% 증가할 전망이다. 완성차 수출 물량은 대미 수출이 현대차·기아 현지 생산 판매 증대와 한국GM(GM한국사업장) 수출 감소에 따라 감소할 전망이다. 또, 2025년 감소한 현대차·기아 유럽 내 생산이 증가세로 돌아서고, 중국·인도 공장의 제3국 수출 증가와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 등 소규모 해외 공장 생산 물량이 증가해 수출선 다변화에도 수출은 3.9% 감소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 생산은 1.7% 감소할 전망이다. 미국이 관세율을 낮췄지만 중국 완성차 수출과 해외 생산 판매가 증가하면서 국내 자동차업계는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맞이할 예상이다. 또, GM의 한국GM 운영 전략과 중국산 수입 물량도 수출과 생산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동차 부품 수출은 국내 완성차의 부품 현지 조달 확대로 인해 감소할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 완성차 해외 생산이 증가하면 부품 수출이 증가해 왔다. 그런데 올해 국내 완성차의 해외 생산 공장이 소재한 미국, 멕시코, 브라질, 중국, 인도, 체크, 슬로바키아와 투르키에에 대한 부품 수출은 현지 생산 증가에도 모두 감소했다.
올해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자동차 산업에는 매우 힘든 한해였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장기 성장둔화에 빠진지는 오래다. 해외 시장에서 완성차 판매 물량이 감소하고 부품 수출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내 완성차는 대규모 대미 직접투자에 이어 125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밝혔다. 매킨지 컨설팅은 2010년 이후 2024년까지 세계 자동차 산업 내 미래차 관련 투자가 1조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분야별로 전기화, 공유차량, 자율주행, 디지털화와 커넥티드카 순으로 투자가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2023년과 2024년 중 미래 모빌리티 관련 투자는 감소했으나, AI, 클라우드, 엣지 컴퓨팅, 사이버 보안, 지속 가능 에너지 분야 투자는 증가했다. 미국 정부가 전동화 계획을 완화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전동화에 이어 자율주행차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AI 투자 경쟁은 데이터 센터 구축을 중심으로 급증해 2030년까지 투자액이 6조7000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내년에는 세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가 열린다.
자동차 산업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AI과 융합을 통해 편의성과 안전성을 제고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넓히게 된다. 산·관 협력을 통해 우리 자동차 업계가 트럼프 행정부 고관세 장벽을 슬기롭게 극복했지만, 세계 자동차산업 환경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따라서 우리 자동차 업계는 과거와 다른 경쟁 전략을 수립해 대응해야 한다. 세계 최고 기술력과 효율성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던 독일과 일본 자동차 산업이 구조조정과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또, 중국의 파상공세 속에서 인도와 베트남 등 신흥 국가 자동차 업체 세계시장 진출도 가속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패러다임 변화와 주요국의 자국 이익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는 공급망과 생태계 구조를 바꾸고 있어서 산·관 협력의 고삐를 한시라도 늦춰서는 안된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정부 열정적인 자동차 산업 지원과 함께 강인하면서 진취적 경쟁 전략을 바탕으로 붉은 말의 해인 병오년을 전화위복의 새해로 맞이하기를 기대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 lyg8779@hanmail.net
〈필자〉이항구 위원은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임하며 제9대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에 임명되기로 했다. 친환경차 보급 뿐만 아니라 기업간 협업법 제정과 상생 결제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 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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