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가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가사사용인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최저임금, 사회보험 등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부가 돌봄에 대한 공공성을 외면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확대하는 것으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가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4일 보면, 올해 예산안에 ‘외국인 가사사용인 활용 직무교육’ 강사료로 3억원이 편성됐다. 외국인 4000명 대상으로 40시간(주말 1일 8시간, 총 5주) 과정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교육을 들은 외국인은 가사사용인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비자제도 개선을 통해 합리적 비용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력 활용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중 유학생, 결혼이민자의 가족, 외국인근로자 등의 배우자 자격 외국인을 가사사용인(가사·육아 활동)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가사·육아 분야에 대한 틈새(시간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수요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외국인들에게는 활동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안정적인 국내 정착을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목적을 설명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비공식 돌봄노동자’가 양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사사용인은 개별 가구와 사적 계약을 맺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부의 인증을 받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에 고용된 가사근로자가 노동관계법 적용 대상인 것과 차별화된다. 지난해부터 서울시가 시행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도 고용허가제를 통해 정부 인증기관이 필리핀 노동자를 고용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법무부는 교육까지만 책임지고 노동자와 서비스 이용자는 어디까지 보호해줄 것이냐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며 “가사근로자법을 형해화시키고 퇴행시킬 것”이라고 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최저임금 미만의 돈을 받고 어떻게 안정적으로 정착하나. 노동자를 착취하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간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정부가 돌봄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 돌봄은 각 가정에서 부모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전제돼 있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정부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싼 값에 노동자를 대줄테니 가정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이라며 “부모가 (양육할) 시간이 없으니까 외주화를 하겠다는 것인데 문제 해결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했다.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진행 과정에서 나온 문제점부터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노동부는 지난달 말 시범사업을 종료하고 본사업으로 확대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지자체 신청률이 저조해 무산됐다. 결국 시범사업만 연장됐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지난달 27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사돌봄노동을 저임금의 이주노동자에게 떠맡기려다 실패한 정책임을 정부 스스로가 시인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확대해서 추진한다는 것은 실패를 또 다른 실패로 덮으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