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곳간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 재정국은 지난달 11일 대법원 판결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법원은 옛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기업에 지급한 ‘창업 인턴 지원 사업비’는 법률상 출연금으로 보조금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허위 수령했어도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해당 사업의 예산 비목이 ‘출연금’으로 돼 있고 사업 시행 방법도 ‘출연’으로 돼 있어 보조금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현행 출연금 제도로는 별도 제재금과 사후 정산 등 관련 규정이 없어 민간단체에 대한 출연금 횡령이 발생해도 처벌 조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는 현재 국가재정법 12조에 따라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민간 등에 출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수행, 공공 목적을 수행하는 기관의 운영 등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률에 근거가 있는 경우 출연이 가능하다. 문제는 출연금 관련 규정은 이 조항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개별 법령에 출연 규정만 넣으면 얼마든지 정부 출연금을 받아내 ‘쌈짓돈’처럼 쓸 수 있다. 국가재정법에는 출연금과 관련해 사후 정산, 제재, 처벌 등에 관한 규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출연금을 받은 후 해당 목적의 범위 내에서 써야 하지만 해당 목적 범위가 개별 법령에서는 넓게 규정된 경우가 많다”며 “사실상 출연 기관의 이사회를 거쳐 사용하면 법적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 출연 기관이 이사회 의결을 통해 출연금을 받아놓고 민간단체에 출연금을 매개로 점령군 행세를 해도 이를 막을 조치가 없다는 얘기다. 사후 자체 감사에서 출연금 횡령 사실이 발각돼도 해당 금액을 되돌려주면 사건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외교부 산하의 준정부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과거 출연금 부정 사용 사실이 적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수사가 중단된 적도 있다. 실제 KOICA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은 민간단체의 국제 협력 활동으로 보조금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출연금을 바탕으로 한 ODA 예산은 2018년 329억 원에서 올해 65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사후 정산 등 관리 체계는 부실하다. ODA는 사실상 민간단체 지원으로 2016년 한때 보조금 비목으로 편성됐지만 2018년 다시 출연금 비목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장희란 국회예산정책처 분석관은 “일부 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출연금 외에 법적 정산 절차가 없어 정확한 사용 내용 파악이 어렵다”며 “예산의 효율적 운용을 저해하는 문제를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