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수입안정보험 본사업화를 골자로 한 농정당국의 ‘한국형 농가 소득·경영 안전망’ 구축 구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야당이 내년도 관련 예산 상당 부분을 감액하려고 벼르고 있어서다. 수입안정보험 본사업화에 차질이 빚어지고 야당이 대안으로 추진 중인 ‘농산물 가격안정제’ 역시 도입이 무산될 경우 농업계는 내년에도 농작물 가격 하락, 재해에 따른 경영위험에 맨몸으로 내몰리게 될 수 있다.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정부가 편성한 수입안정보험 예산 2078억원 중 1119억2600만원을 감액했다.
수입안정보험은 농작물 가격 하락과 재해 등으로부터 농가경영을 다층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구상 중인 ‘한국형 소득·경영 안전망’의 핵심 정책 수단이다. 현재 9개 품목을 대상으로 시범 운용 중인데, 정부는 내년엔 이들 9개 품목은 본사업화(전국 단위 가입)하고 시범사업으로 6개 품목을 신규 추진하겠다면서 올해(81억원)보다 대폭 늘어난 예산을 편성했다. 가입률 목표치는 본사업 품목 기준 25%(현재 3% 수준)로 잡았다.
하지만 예산 삭감을 주도한 야당은 정부 구상이 졸속이라면서 가입률 목표치도 10∼15%가 현실적이라고 봤다. 다만 야당은 삭감한 수입안정보험 예산만큼 농작물재해보험을 증액했다. 정부 구상대로 수입안정보험 확대를 추진하되 예산이 부족하면 농작물재해보험 예산을 전용하라는 의미에서였다.
수입안정보험과 농작물재해보험은 농업재해보험의 내역사업으로 두 사업의 예산 전용은 이론상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선 문제가 복잡하다. 수입안정보험은 품목별로 가입 시기가 제각각인데 연말에 농작물재해보험 예산이 얼마나 남을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초부터 수입안정보험으로 돈을 끌어 쓰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수입안정보험 판매 현장에선 품목별로 판매 한도를 얼마로 설정할지, 예산으로 운용하는 품목과 전용을 통해 운용하는 품목간 한도 차이는 어떻게 둬야 할지를 두고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남은 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다. 야당은 예결위에서도 예산 복원은 없다고 엄포를 놓는 반면 정부는 당초 구상만큼의 예산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의 ‘수입안정보험 가입률별 소요예산’ 자료에 따르면 가입률 목표를 10∼15%로 잡더라도 1066억3600만∼1503억2100만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특히 야당은 쌀의 가입률 저조를 우려했는데 농식품부는 이 역시 기우라고 반박한다. 수입안정보험은 당해 수입(수확량×가격)이 기준 수입의 60∼85% 아래로 떨어지면 발동하는데, 야당은 쌀값이 이만큼 떨어지기 쉽지 않아 제도 실효성이 낮다고 봤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평균 쌀값만 보면 그렇지만 개별 농가 단위에선 수확량과 여기에 가격을 곱한 수입이 얼마든 큰 폭으로 변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지금 상황을 초래한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제도 운용의 핵심인 농가수입 파악 체계는 2027년에야 구축한다면서도 당장 필요한 손해평가 실사 인력은 충분히 확보하지 않아 야당의 공격에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 구상에 차질이 생기면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입안정보험 대신 농작물 가격이 기준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차액을 정부가 직접 보전하는 ‘농산물 가격안정제’를 도입하기 위해 최근 농해수위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정부·여당과 이견이 커 향후 국회를 통과해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유력하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야당이 주도하는 ‘농산물 가격안정제’ 도입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수입안정보험사업마저 예산문제로 발목이 잡혀 답답하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농가의 소득·경영 안정이 급선무라는 점을 인식해 접점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양석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