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윳돈 70만원도 안되는 중산층 가구
부동산 포모·사교육비 부담에 짓눌려
취·등록세, 이자·교육비 등 늘어난 탓
직장인 송모(55)씨는 통장 잔고를 볼 때 마다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올해로 직장생활 25년차인데 딸 혼수도 제대로 못해줄 형편이기 때문이다. 송 씨는 경기도의 한 지방 공무원이다. 송씨는 “나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데 각종 세금과 학원비, 관리비, 보험료, 경조사비 등을 내고 나면 통장에 몇 십 만원 남는다”며 “목돈 마련이 쉽지않으니 노후 대책은 꿈도 못꾼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월급은 제자리걸음인데 물가 오름세는 가팔라 가족들과 외식 한 번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상위 40∼60% 가구의 여윳돈이 70만원을 밑돌고 있다. 가구 소득은 늘었지만 부동산 구입에 따른 취·등록세, 이자·교육비 등이 큰 폭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이른바 부동산 포모(FOMO·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공포) 심리, 사교육비 부담 등에 짓눌린 대한민국 중산층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소득 3분위(상위 40∼60%) 가구 흑자액(실질)은 1년 전보다 8만8000원 줄어든 65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4분기(65만3000원) 이후 5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70만원을 밑돈 것도 5년 만에 처음이다.
흑자액은 소득에서 이자·세금 등 비소비지출과 의식주 비용 등 소비지출을 뺀 금액으로 가계 여윳돈에 해당한다.
3분위 가구 흑자액은 4년 전 만해도 90만원을 넘어으나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가파르게 줄고 있다. 2022년 3분기 이래로 2023년 2분기와 2024년 1분기를 제외한 8개 분기에 모두 감소했다. 특히 작년 2분기부터는 3개 분기 내내 줄며 감소폭도 커졌다.
흑자액이 최근 3개 분기째 감소한 것은 3분위가 유일하다.

3분위 가구 흑자액이 쪼그라든 것은 보건·교통·교육비 분야 소비지출과 이자·취등록세 등 비소비지출이 증가한 영향이 컸다.
작년 4분기 3분위 가구 비소비지출은 77만7000원으로 1년 전보다 12.8% 늘었다. 가계 소득·지출 통계를 함께 집계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가장 많고 증가 폭도 최대다.
이자 비용은 1.2% 늘어난 10만8000원이었다. 4분기 만에 증가하며 다시 10만원을 넘어섰다.
부동산 구입에 따른 취·등록세가 늘면서 비경상조세(5만5000원)가 5배 가까이(491.8%) 증가한 점도 가구 여윳돈을 줄이는 요인이 됐다.
교육비(14만5000원) 지출은 13.2% 늘었다. 전체 가구의 평균 교육비 증가 폭(0.4%)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중산층 가계 여윳돈의 급격한 위축은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7일 발간한 '최근 소비 동향 특징과 시사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3분위 가구의 2020년 이후 실질 소비는 코로나19 직전보다 부진한 것으로 분석됐다. 1분위와 4·5분위가 엔데믹 이후 회복세를 보인 점과 대조적이다.

보고서는 “중위소득 계층에서는 가계부채 증가와 이자비용 증가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 여력이 급격히 하락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3분위는 자가 점유 비율이 50%를 넘고 교육비 지출도 고소득층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계층”이라며 “이들 계층의 여윳돈 감소는 내수에 새로운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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