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10월’로 점쳐왔던 채권시장 전문가들이 최근 ‘11월 인하’로 대거 수정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를 비롯한 금융통화위원들이 연이어 부동산 시장 과열 해소와 금융안정을 강조하면서다.
특히 7일간 이어지는 긴 추석 연휴가 한은의 10월 금통위 결정에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연휴 기간 가계의 소비와 부동산 관련 의사결정이 이후 시장 추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오는 22~23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예정돼 있다. 통상 회의 약 일주일 전에는 금융통화위원들과 주요 부서가 참여하는 비공식 경제점검 회의가 먼저 열린다. 한은 내부에서는 추석 연휴 이후 발표될 주요 경제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황건일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당장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한다면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게 맞다”며 현재로서는 금융안정을 1순위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추석에 가족들이 모여 (소비나 부동산 구매 관련) 의사결정을 많이 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봤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10월 결정이 역대 최고로 어려운 회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추석 이후 발표될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거래량 추이, 가계부채 증가 속도 등이 금통위 판단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창용 총재 역시 신중한 기조를 재확인했다. 그는 지난달 16일 서울대 경제학부 특강에서 “금리 0.25%포인트 인하를 한두 달 미뤄도 경기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인하 시그널로 서울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더 고생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18일 국제통화기금(IMF) 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한국은 중립금리를 고려할 때 금융안정을 함께 봐야 하므로 다른 나라보다 약간 높은 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신성환 금융통화위원이다. 그는 한은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서 “금융 여건 완화(기준금리 인하) 과정에서 금융 불균형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당분간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간 인하 소수 의견으로 ‘비둘기파’로 분류됐던 신 위원이 금융안정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10월 인하를 예상하던 전문가들도 잇따라 전망을 11월로 늦추고 있다.
김성수 한화증권 연구원은 “강력한 대책과 규제로 더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서울-지방 아파트 가격 격차가 전고점을 경신했다”며 “지금은 금융안정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인하는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기존 10월에서 11월로 변경하며 “이번 인하가 현 사이클의 마지막 조정이 될 가능성이 크고, 내년에는 연 2.25%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중앙은행이 중시하는 지표에서 불안한 흐름이 확인됐다면 위험을 감수하며 빠른 인하를 추진할 이유는 없다”며 “연내 인하 시기는 11월로 이연될 가능성이 크고, 부동산 시장이 진정되지 않으면 추가 인하도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금융투자협회가 최근 채권시장 참가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7%가 ‘동결’을 예상해, 인하를 전망한 응답(34%)보다 많았다.
김진욱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10월 중순 추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더라도, 한은은 실제 가격 안정이 확인되기 전까지 인하를 피할 것”이라며 “한미 관세 협상 결렬 여부가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달린 만큼, 금리 결정을 늦추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외환시장에서도 최근 1400원 안팎을 오가는 원·달러 환율 흐름에 대해 “APEC 이후로 판단을 미루는 게 현실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하는 예정돼 있어 중기적으로는 달러화 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한미 관세 협상이 환율 방향의 ‘키’가 될 것”이라며 “결국 APEC 정상회의 이후 시장이 방향성을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