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 그래 며칠뒤엔 괜찮아져, 그 생각만으로 벌써 일년이...”
브라운아이즈가 지난 2001년 발표한 '벌써 일년'의 가사다. 당시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고, 앨범도 100만장 넘게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대중들이 이 곡에 열광한 것은 흔치 않은 한국형 R&B 보컬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 마음을 울리는 가사와 이를 잘 표현한 뮤직비디오 등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곡의 가사처럼 이별 같은 큰 일을 겪으면 우리는 일단 하루하루를 버티자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버티다보면 일주일, 한달이 지난다. 그러다보면 충격과 고통에 조금은 무뎌지고, 견뎌낼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은 지금 우리나라 의료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해 2월 6일 정부가 2025년 의대정원 2500명 확대를 발표했고,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했다. 같은 달 20일에는 전국 주요병원 전공의들이 줄줄이 의료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의정갈등, 의료대란 등으로 표현하는 사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그게 벌써 일년이 됐다.
지난 일년 동안 의료계 주변 누구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의료현장을 지킨 의사들도,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도, 전공의가 빠진 자리를 메운 간호사 등 의료진까지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전과 달리 병원 진료에 큰 차질과 불편을 겪은 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를 꿈꾸며 공부하던 의대생들도 집단 휴학을 하며 교육현장을 떠났다. 의료개혁을 추진하려던 정부 관계자들 역시 힘들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직간접적인 피해는 상당하다. 각 병원과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들은 이전보다 진료받기가 어려워졌다. 실제로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 만든 '의료공백 기간 초과사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7월 전국 의료기관에서 초과사망이 3136명 발생했다. 초과사망은 특이적인 원인이 작용해 통상 기대되는 사망을 넘어선 사망을 뜻한다. 같은 기간 입원 환자 사망과 사망률도 전년 대비 증가했다.
의사 인력 양성도 비상등이 켜졌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하던 9000명이 넘는 전공의가 대거 사직하면서 전문의 양성에 차질이 생겼다. 의대생 집단 휴학으로 의사 양성 공백도 불가피하다. 2025년 새로 입학하는 의대생들이 휴학하지 않고 제대로 수업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산업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쳤다. 임상시험이 크게 위축되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에 영향을 미쳤고, 병원들의 디지털전환 등 차세대 사업도 일정이 지연됐다.
문제는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다. 전공의와 의대생은 돌아오지 않았고, 남겨진 의료진은 피로도가 극심해지며 '번아웃' 직전까지 왔다. 단지 모두가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 조금 익숙해졌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지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은 조속히 끝내야 한다. 그 시작은 정부와 의료계가 만나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오는 14일로 예정된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그동안 정부와 한 자리에 있는 것조차 거부했던 대한의사협회가 공청회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양측 입장이 한번에 조율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입장을 밝히고, 이를 논의한다는 것만으로도 타협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 이번엔 반드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길 기대한다.
권건호 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