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들의 배움과 공부는
한국 사회 전체의 변혁과 연결
“학생이 되려면 투사 먼저 돼야”
‘불가능’에서 혁명의 씨앗 발견
지난해 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지난 16년 동안 이어온 직함이다. 2008년 가을밤의 첫 수업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업을 몇 시간 앞두고 야학이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수업 형태로 진행한다고 했다. 현장수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견학이나 야유회 같은 것인 줄 알았다. 막상 가보니 시위 현장이었다. 그날 서울시교육감이 장애인교육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하자 교사와 학생들이 뛰쳐나온 것이다. 수업시간이 임박했는데도 몸싸움이 계속되었다. 수업이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수업시간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수업 대형이 만들어졌다. 얼떨결에 학생들 앞에 선 나는 경찰을 등진 채 철학자 스피노자의 신과 선악 개념에 대해 강의했다.
갑자기 시위를 중단하고서 시위 내용과 상관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서 진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가 너무 좋았다. 딱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서 수업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역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날의 수업 자체가 매우 급진적으로 느껴졌다.
학생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수업이 급진적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중증장애인 학생들이 학업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급진적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체를 변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노들야학의 정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지 않고서는 학교조차 갈 수 없다는 것, 사회 전체를 새로 배우게 하지 않고서는 야학에서의 작은 배움도 불가능하다는 것. 학생이 되려면 투사가 먼저 되어야 한다.” 스피노자보다 급진적인 것은 스피노자를 배우고 싶다는 중증장애인의 욕망과 의지다. 노들야학은 이 욕망과 의지를 일깨웠다. 이 일깨움은 교육이기도 하고 운동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는 ‘배움을 가능케 하는 배움’ ‘운동을 가능케 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상황이 또 변했다. 탈시설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중증발달장애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지금은 다수의 학생이 발달장애인이다). 내 수업은 어떤 불가능성에 직면했다. 지적장애 학생들은 철학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지루함을 느꼈다. 철학자들의 논리나 개념은 전달 자체가 불가능했다. 학생들은 바로 잠들거나 교실 바깥으로 나가려고만 했다. 교육만이 아니라 운동도 불가능했다. 시위 현장에 나간 학생들은 연사들의 발언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발언을 하고 싶다고 나가서는 트로트 한 곡을 뽑아대고, 투쟁가가 나오면 무조건 몸부터 흔들어대고, 농성장을 소리지르며 뛰어다녔다.
이들에게는 교육도 불가능하고 운동도 불가능하고 노동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야학은 이 불가능성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음악교사는 이들의 흥얼거림에서 멜로디를 찾아 작곡했고, 무용교사는 이들의 정형적 행동으로 안무를 짜서 무대에 올렸다. 사회교사는 이들의 노래와 몸짓으로 새로운 시위 형태를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사가 만들었다기보다 학생들이 음악과 춤, 시위에 대한 교사들의 통념을 바꾼 것이다. ‘중증장애인 맞춤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도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이 학생들의 소리와 몸짓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노들야학은 교육의 불가능에서 교육을 바꿀 가능성을 얻고, 운동의 불가능에서 운동을 바꿀 가능성을 얻고, 노동의 불가능에서 노동을 바꿀 가능성을 얻었다. 나는 여기서 불가능성을 껴안고자 할 때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배웠다. 노들야학 교장을 지낸 박경석은 “최중증장애인은 존재 자체가 혁명의 씨앗”이라고 했는데 정말 옳은 말이다. 최중증장애인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우리 사회를 크게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수업이 야학에서 제일 재밌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내 수업 시간마다 잠을 잔다. 수업 직전까지 수다를 떨다가도 수업을 시작하면 바로 잔다. 한때는 그것이 무척 괴로웠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의 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빙긋 웃는다. 내가 뭔가를 가르치려 들 때마다 그는 항의를 하듯 잠을 잔다. 아직 우리의 민주주의가 감당 못하는 이 급진주의자 앞에서 나는 계몽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깨움이라는 말조차 넘어서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이 불가능성과 처음으로 즐겁게 대면하고 있다. 이 불가능성을 품고 당분간 침잠할 생각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란스러운 시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