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관세 폭탄 피한 한국... 안심 이르다 [뉴스+]

2025-01-22

트럼프 보편관세 유예…하반기 시행 가능성

멕시코·캐나다·중국 관세 부과로 간접 타격

"제조 경쟁력 바탕 美中경쟁 반사이익 활용을"

한국 전략적 중요성 강조…‘윈윈’ 협상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즉각적인 보편 관세 조치를 발표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는 ‘수출 타격’이라는 직격탄을 피했다. 한국을 직접적인 타깃으로 발동한 행동명령이 아직 없다는 건 다소 안도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다만, 내달부터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에 관세를 부과할 방침인 만큼 이들 나라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수출에 악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는 1기 때보다 더 세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중 경쟁에서 발생하는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보편관세 유예…올 하반기 시행 가능성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달 중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이 펜타닐(좀비 마약)을 멕시코와 캐나다에 보낸다는 사실에 근거해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부과 시점은 “아마도 2월 1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멕시코과 캐나다산 수입품에 대해서도 다음 달 1일 관세 25% 부과 방침을 공식화했다. 대신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물리는 공약에 대해선 유예 입장을 보였다.

그가 관세 부과 조치를 늦춘 배경에는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보편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야기해 결과적으로 미국 가정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2일 우병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세를 매기면 결국 미국 시장에서 수입품 가격이 올라간다”며 “그렇게 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한 우려로 관세 부과를 주저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편 관세는 늦어도 올 하반기에는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제시한 고관세가 적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우 교수는 “트럼프 경제팀에는 제조업 부흥을 주창하는 중상주의적 인사들과 감세, 정부 개입 축소 등을 원하는 전통적 공화당파, 또 일론 머스크 같은 실리콘밸리 빅테크 출신 인사들이 섞여 있다”면서 “세계관 충돌로 전폭적인 관세 인상 드라이브는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멕시코·캐나다·중국 관세 부과, 韓기업 타격

당장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대한 우려를 덜었지만,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6일 ‘트럼프 2기 관세 정책의 리스크 점검 및 대응’ 보고서에서 트럼프 관세 정책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산 미국 수출품에 부과되는 관세가 인상됨에 따라 우리나라 대미 수출이 축소될 것”이라며 “멕시코와 캐나다 등 한국 기업이 다수 진출한 지역에 고관세가 부과되면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중간재 수요 감소에 따른 한국산 중간재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의 보편 관세가 현실화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이 최대 14%까지 줄어든다는 분석도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26일 ‘트럼프 보편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이 최소 9.3%에서 최대 13.1%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대미 수출 감소에 따른 명목 부가가치는 관세율에 따라 7조9000억원에서 10조6000억원까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대로 다음 달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가 부과되면 이들 나라에 공장을 둔 삼성과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멕시코 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가전 물량을 미국 공장으로 옮기는 등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의 대미 수출 주력 종목인 자동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추가 조치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대미 수출 중 자동차는 전년 대비 8% 증가한 342억달러를 기록해 전체의 26.8%를 차지했다. 자동차는 한국의 대미 흑자에서 약 60%를 차지한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 압박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최근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 의존도는 트럼프 1기 때보단 낮아졌지만, 메모리나 반도체 등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수출품은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중국이 미국발 고관세를 맞게 되면 물건을 우회 수출하거나 과잉 생산할 가능성도 있다. 이 과정에서 대외 경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국제시장에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이 미국에 보복 관세로 맞대응할 경우에도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 가격 변동이라는 불똥을 맞을 수 있다.

제조업 경쟁력 기반 반사이익 활용…전략적 ‘윈윈’ 필요

국내 주요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중 경쟁에서 발생하는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조선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과 함께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미국 해군 함정 수리 시장과 상선 건조 시장을 중심으로 새 정부와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석유와 셰일오일 시추 확대 등 화석연료 패권을 강조한 것도 기회 요인이다. 미국의 천연가스와 원유 수출이 늘어나면 초대형 원유운반선이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에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도시 개선용 소형모듈원전(SMR)과 변압기, 전선 등의 인프라 업계나 태양광,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수혜가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분담 확대 등 추가 요구사항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국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둬야 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세계일보에 “미국이 방위비 증액이나 주한미군 축소 등과 연계하거나 안보·경제를 묶어 우리나라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해 트럼프 1기 때와는 차별화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윈윈(win-win)’ 요소를 넓힐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 원장은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은 FTA 체결국이자 핵심 공급망 협력국인 만큼, 중국을 배제했을 때 한국만큼 미국에 필요한 국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며 “미국에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국가인지 잘 설명하면서 내줄 것과 얻을 것에 대해 균형을 맞추는 협상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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