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결이 ‘축복’이던 시대 지나고
전 세계 연예인 가십거리들 홍수
거슬리던 사람의 글도 계속 보여
‘끊어내기’ 할 줄 알아야 평화 찾아
이것은 두 가지 짜증과 두 번의 단절과 두 사람의 조언에 대한 이야기다. 짜증의 원인은 결국 소셜미디어였다.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하는 몇 개의 뉴스 계정.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었다. 묘하게 거슬리는 구석이 있었는데 어찌어찌 곁을 내주던 사람. 최근 들어 부쩍 더 거슬리기 시작했는데 점점 더 ‘곁에 두면 안 될 사람’의 조건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만 켜면 또 눈에 들어오니 거리 두기가 필요했다. 계정과 사람으로부터 몸도 마음도 좀 멀어지고 싶었다. 피곤하고 위험해서.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계정의 팔로어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요즘은 이런 뉴스 계정들이 인기구나.’ 처음 팔로우할 때의 마음은 그 정도였다. 그때의 규모는 지금의 20% 정도였을까. 이후 폭풍처럼 성장했는데 규모와 퀄리티 사이의 불균형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사업은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타는 거라는 말은 누가 했었지? 그 계정도 그랬을 것이다. 성장하니 확장하고 확장하니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포스팅을 분 단위로 쏘아올렸을 것이다.
그 결과 스마트폰 위에 전 세계 연예인들의 소식이 쏟아지게 되었다. 그 자체로는 불쾌하지 않았다.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사람은 아름답고 소식은 사소했다. 지나치게 사소해서 거의 무용한데 시간과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게 너무 많이 보이니까 문득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는가. 꼭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자괴감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머리에는 자괴감의 안개가 자욱이 낀 채였다. ‘브레인 포그(brain fog)’가 이런 거였구나. 나는 휴식한 걸까? 즐긴 걸까? 파리 패션 위크가 한창이던 때였다. 누가 어떤 브랜드 첫 줄에 앉았고 너무 예쁘고 완벽하고 누구는 고양이 같은 포즈를 지었다는 포스팅들이 줄줄이 올라오던 날,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사람들이 모인 파리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는 내 뇌는 거의 마비 직전이었다.
원래 하려던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 채 나는 오히려 지쳐 있었다. 아무렇게나 치고 들어오는, 너무 사소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재밌는 소식에 내 시간과 집중력을 위탁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서 즉시 ‘언팔’했다. 비슷한 뉴스 계정 몇 개를 그날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터치 한 번의 저항으로 모든 소식이 즉시 끊겼다. 누가 누구랑 사귀었는데 뭐가 어쩌고, 누가 옷을 어떻게 입었는데 경찰에 붙잡혀 갔다는 세계적인 셀러브리티의 소식만 끊긴 게 아니었다. 그 계정들이 그 어떤 뉴스 채널보다 빠르게 퍼나르던 각종 사고와 다양한 가십까지 동시에 끊겼다. 마침내 조용해졌고, 그걸 좀 모른다고 삶의 질이 낮아지는 일은 벌어질 리 없었다. 이 시대의 평화는 각종 뉴스를 모르는 자의 것. 몇 번이고 스크롤해도 눈이 시끄럽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정리가 필요했던 건 몇몇 계정만이 아니었다. 돌아서면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무심코 듣고 있으면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 같았는데 집에 가는 길에 생각해보면 결국 자기 자랑 일색이었던 사람. ‘나는 이미 잘하고 있는데 너는 아마 나 없이는 잘 안 될 거야’ 웃는 얼굴로 의지를 꺾는 사람이었다. 딱히 대단할 것도 없었는데 어쩐지 언변이 화려했던 그 사람. 최근 에세이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을 출간하고 각종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던 이경규는 44년간 사회적 물의도 쉼도 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단 주위에 약간 ‘사짜’들이 있어. 정직하지 못한 애들. 걔들은 가차 없이 잘라 버려야 해. 있는 척하는 애들이 있어. 척척척 하는 애들은 다 사짜야. 진실하지 못하지. 접어야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처럼 아닌 것 같으면 만나지 마세요. 이게요, 인간이 망하는 게 고독을 못 이겨서 망하는 거예요.”
언뜻 가볍게 느껴지는 말 안에 진리가 담겨 있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방법.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야말로 요즘 같은 과잉 연결 시대에 가장 필요한 태도 같아서였다. 애초에 왜 만났을까. 나도 혹시 외로웠던 걸까? 그냥 사람이 고팠던 건 아니었을까. 이런 깨달음은 갑자기 온다. 내 속내와 관계의 본질을 알게 되어 ‘이제 그만해야겠다’ 혼자서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무슨 선언 같은 건 필요도 없다. 그냥 속으로 안녕, 작고 선명한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이경규는 이런 말도 했다.
“늘 주의해서 살죠. 술을 먹더라도 집 근처에서 먹고. 과하게 많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많은 것을 탐하지 않고 비우기 연습도 하면서.”
2010년 즈음에는 연결이 축복 같았다. 소셜미디어 3대장.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가 고루 재미있었다. 각종 비즈니스가 새롭게 싹트면서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 같았다. 관계의 화학작용도 차마 예측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새롭게 확장했다. 누구든 만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무슨 유행 같았다. 이후 10여년이 흘렀고 아무것도 예전 같지는 않다. 인맥과 네트워크가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던 시대도 애저녁에 끝났다. 상수와 허수가 서서히 구분되어 가는데 아직도 어떤 ‘척’으로 화려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태도를 반복하고 있지만….
만났을 땐 다정한 형 같았던 누군가는 페이스북에서 일종의 구루를 자처하고 있었다. 각종 정치·사회 이슈에 딱히 옳다고는 하기 힘든 의견을 확신에 찬 어조로 쓰면서 2차 잡음을 생산하고 있었다. 터지는 댓글창과 지지와 욕설들을 심지어 즐기고 있었다. 모두에게 예의 바르고 순진해 보이던 한 친구는 어느 날 자기 포스팅에 광고를 걸더니 며칠 뒤에 팔로어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내 뒷말이 돌기 시작했다. 팔로어는 늘었는데 ‘좋아요’ 수는 전혀 늘지 않았고 그게 다 동남아 계정이더라는 식의 수군수군.
누구나 누군가에게 중요한 뭔가가 되고 싶어한다.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애쓴다고 되는 거였나?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욕망과 속내를 실시간으로 관전하는 것은 얼마나 피곤하고 부담스러운가. JYP의 수장 박진영은 ‘인맥 쌓으려고 술자리에 가거나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시간 보내는 일은 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추천해 드리고 싶다’고 조언하면서 그 시간에 혼자 실력을 기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결국 사람은 이기적이라서. 서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결국 연결된다는 것이다.
문득 살펴보니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 명 한 명 조용히 마침표를 찍던 오후가 있었다.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연결되어 있던 사람. 다짜고짜 언팔하긴 좀 가깝고 그렇다고 꼴보기는 싫은 그런 사이. 어디서 인사 한두 번 정도 나눈 적은 있어서 ‘맞팔’ 사이가 되었는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에도 꾸욱꾸욱 작별을 고했다.
여러모로 피곤하고 꼴불견이지만 그래도 소셜미디어의 장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일까. SNS 피드에는 뒤틀린 의도와 욕망까지 너무 투명하게 보였다. 어느새 조금 더 많은 ‘사짜’들을 거를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어 걸러야 하는 사람은 확실히 거를 수 있게 해준다. 연결을 위해 태어난 기술이 단절의 단초가 되는 이상한 시대. 자기 피드를 무심코 흘려보다 문득 머리에 안개가 자욱한 것 같은 날이라면 권하고 싶다. 마음의 평화와 집중력은 몇 개의 ‘언팔’을 통해 손쉽게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