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배의 선장은 당신" ‘펑크의 대모’가 청춘에게…패티 스미스 단독 인터뷰

2025-04-23

기자와 마주 앉은 ‘펑크록의 대모’는 연신 손으로 레몬 조각을 짜 넣으며 차가운 물을 마셨다. 18일 오후 서울 퇴계로의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 패티 스미스(79)가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를 4층까지 직접 안내하고 난 참이었다. 음향 예술가 스테판 크라스닌스키(56)가 이끄는 '사운드워크컬렉티브'와의 협업 전시의 첫 아시아 투어다.

전시장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대형 산불, 동식물의 대량 멸종, DMZ 인근의 생태 등과 함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파올로 파솔리니, 마리아 칼라스 등 예술가들의 삶을 탐구하는 영상이 흘렀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영상에 패티가 쓰고 읊조린 시가 깔렸다. 전시를 소개하면서 그는 "로큰롤을 한 지 반세기다. 78세에도 나는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패티는 청바지에 검은 재킷, 워커를 신고 긴 백발을 양 갈래로 땋은 채 나타났다. 전시장에서 준 티셔츠의 아랫단을 직접 잘라 재킷에 받쳐 입었다. 스타일 칭찬에 “70년대 입던 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딸이 ‘엄마는 만날 똑같다’고 웃을 정도”라고 응수했다. 실제로 베니스 영화제 레드카펫에서도, 수 만 명이 모인 콘서트 무대에서도 그는 늘 이 차림이다. “작년 내내 쓰던 책을 막 탈고한 참인 데다가 전날 도착해 전시를 마무리해서 몽롱한 상태”라면서도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다.

70대에도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예술가란 그런 존재다. 발견되지 않았던 걸 발견하는 사람들이고, 그걸 새로운 방식으로, 색다르게 보여주는 사람들이잖나. 난 그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hard worker)이다. 과거엔 공장ㆍ서점ㆍ어시장에서도 일했지만, 지금은 다행히 9시부터 6시까지 쭉 일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다. 스스로 내 시간을 훨씬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새로운 걸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사실 10년 전보다는 확실히 에너지가 줄어들었다. 잘 관리하는 법(energy management)을 터득 중이다. 예전 같으면 콘서트 마치고 파티도 가겠지만 지금은 그냥 산책하고 카페에 앉아 글 조금 쓰다가 공연하고는 호텔 가서 쉰다. 이렇게 에너지를 관리하면서 일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평소 하루는 어떻게 보내나.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두 팔 벌려 기지개를 켜며) 대단한 운동은 아니고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걸 나는 ‘새 하루에 인사(Greeting the day)’라고 부른다. 펜과 공책, 돈을 좀 챙겨 근처 작은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쓰고, 몽상하고, 간단한 아침도 먹는다. 아침 8~10시는 딱 나만의 시간, 누가 물어볼 거리가 있다 하면 난 ‘10시 이후에’라고 답한다. 이 시간 만큼은 내가 생각하고 온전히 글을 쓸 시간이다. 매니저나 언론 담당자를 따로 두고 있지 않아서 10시 이후엔 미뤄둔 일을 본 뒤 산책한다. 딸과 점심을 먹거나 혼자 간단히 해 먹는다. 오후에 일을 좀 더 한 뒤 밤에 책을 읽거나 한국 드라마 시리즈를 본다.”

한국 드라마 시리즈를 보나.

“‘슈룹'(영어판 제목은 'Queen's Umbrella')을 재미있게 봤다. 김혜수, 난 그녀에게 아카데미상 주고 싶다! 한국 드라마가 좋은 게 한 회 한 회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 같은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갖고 있다. 한국어가 음악처럼 들려서 영어 더빙판이 아니라 꼭 자막으로 본다. 이게 내 주요한 엔터테인먼트다.”

단순한 일상인데.

“친구가 별로 없다. 슬프게도 많이들 세상을 떠나서. 다행히 10여년 전 스테판 같은 젊고 관심사가 통하는 새 친구를 만났다. 나이든 나는 인도의 높은 산을 오르고, 그린란드의 빙하에 갈 수 없지만, 스테판이 현지에서 채집해 온 자료를 보고 시 쓰고, 그림 그리고, 퍼포먼스를 한다.”

패티를 만나기 전에 입안에 맴돌았던 질문은 “가까운 이들이 대부분 떠났는데, 이런 상실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였다. 젊을 때 깊이 교류했던 동갑내기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89)는 43세에 잃었다. 그리고 5년 뒤, 함께 남매를 키운 남편 프레드 소닉 스미스가 세상을 떴다. 그녀는 "병약했던 내가 이렇게나 오래 살 줄 몰랐다. 주변에 약물을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인생을 낭비할 수 없다’ 여겼기에 이것만큼은 피했다"고 돌아본 바 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와의 젊은 날을 추억한 에세이 『저스트 키즈』로 패티는 2010년 전미 도서상을 받았다.

뮤지션ㆍ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전시로 한국에 왔다.

“시인으로 시작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시를 쓰다가 로큰롤에 빠지게 됐다. 로큰롤에서는 협업이 익숙하다. 노래하든 시를 낭송하든 여러 세대를 넘어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시는 핵의 폐해나 종의 멸종 같은 세상의 고통을 담은 한편 내 책 『저스트 키즈』에서처럼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다. 모든 세대분들께 흥미로운 전시이길 바란다.”

1946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패티는 21세에 교대를 중퇴하고 뉴욕에 갔다. 이런 딸에게 어머니는 "줄 게 이것밖에 없구나"라며 웨이트리스 제복을 가방에 넣어줬다. 첫 시집을 낸 게 1972년. 첫 정규 앨범 ‘호시스(Horses)’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아 미국과 유럽 투어를 준비 중이다. 2016년 밥 딜런이 불참한 노벨문학상 시상식 공연에 가수이자 시인으로 선 것도 패티였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딜런의 곡(A Hard Rain's A-Gonna Fall)을 불렀다.

25세의 패티 스미스를 만난다면 해 주고 싶은 말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20대 후반 막 로큰롤에서 인기를 얻고 부담감이 클 때였다. 남들에게 쉽게 요구하고 특권 의식을 갖고 남들을 대하다가 실수를 했을 법한 그런 시기였다. 나라면 이제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그 외에는 과거의 내 삶에 불만은 없다. 실수도 했겠지만, 그냥 '그런 거지'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뭐라 말하겠나.

"요즘 젊은이들 정말 살기 힘들 것 같다. 나 때는 소셜미디어도, 유명인 중심의 컬트도 없었다. ‘최고의 비평가는 당신’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이든 멘토든, 영향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제대로 평가할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타인의 의견이 나를 바라보는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하겠다."

소셜미디어를 하나.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 때론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잔인하고 못된 글들 남기잖나. 나는 터프한 편이라 그런 데 별로 신경을 안 쓰지만 영혼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큰 상처와 충격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에게 그런 건 좀 거르라고, 결국 ‘당신 배의 선장은 당신이다’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당신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타인의 시선에 기대지 말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 주면 좋겠다.”

이번 전시에는 비무장지대(DMZ) 인근 토양과 식물을 바탕으로 한 신작 ‘보이지 않는 풍경’도 나왔다. 이에 대해 그녀는 “더이상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도 발휘되는 자연의 회복력이 슬프면서도 희망적이었다”며 “특히 여기서 채집한 새소리가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패티는 2009년 지산 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한국에서 처음 공연했다. 이번에는 전시로 찾아왔다. “전시장에서 남녀노소가 바닥에 앉아 영상을 보다가 영감을 얻어 시도 써 보면서 ‘나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 볼까’ 상상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프닝에 시 낭송을 하기로 돼 있었지만 “전시장에서 시는 지겹도록 들었을 테니 노래를 하겠다”며 즉흥으로 읊조리듯 노래를 불렀다. 행사를 마친 뒤엔 숙소로 돌아갔다. 인터뷰 중 말했던 ‘에너지 매니지먼트’. 전시는 일본 도쿄도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7월 20일까지, 성인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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