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무용이 뜨겁다. 대극장 공연을 연달아 매진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드레스 리허설까지 공개해 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빗발친다. 성공의 키워드는 동시대성. 과거 한국 무용이 굿거리장단에 맞춰 추는 느릿한 부채춤이라면, 지금 공연계를 달구고 있는 한국 무용은 오감을 자극하는 케이팝 뮤직비디오 같다. 패션 매거진의 아트 디렉터부터 아이돌 무대 디자이너까지 끌어들이며, 한국 무용은 어느 때보다 빠르고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24~27일 세종문화회관 S시어터에 오르는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스피드'. "한국 무용은 느리다"는 편견을 부수겠다고 작심한 듯 만든 제목이다. 작품은 한국 무용의 기본 요소인 장단에 변화를 주고 움직임의 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총 6개의 장과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이뤄져 있는데, 2인무·군무 등 다채로운 춤이 이어지고, 5장에 다다르면 단 한 명의 무용수가 정해진 안무 없이 5분간 즉흥 춤을 춘다.
작품을 안무한 윤혜정 서울시무용단장은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요소 가운데 속도(speed)에 집중했다"며 "이번 '스피드'를 통해 한국 무용은 느리고, 정적이며, 고요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밝혔다.
무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장구를 형상화한 대형 모래시계 오브제다. 가로 12m 세로 8m 크기의 LED 미디어아트 영상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음악은 타악과 전자음악을 썼다. 티켓은 오픈 직후 S 시어터 328석 4회차가 전부 매진됐다.
지난 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무용단 신작 '미인'은 이미 공연 3주 전 1221석의 대극장 4회차 티켓이 매진되며 화제를 모았다. '광클'에 실패한 팬들의 공연 증회 요청이 빗발쳐 이례적으로 정식 개막 하루 전 드레스 리허설 객석을 유료로 내놓기까지 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미인' 예매자 중 2030 비율은 62%. 비슷한 시기에 공연을 올리는 발레 공연(유니버설발레단 '지젤' 56%, 국립발레단 '카멜리아 레이디' 58%)보다도 2030 예매 비율이 높다.


2030을 '미인' 공연장으로 달려가게 한 것은 면면이 화려한 '어벤저스' 창작진이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총괄했던 연출가 양정웅, 엠넷 무용수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에 코치로 출연했던 안무가 정보경, 보그 코리아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의상 디자인), 이날치 밴드 장영규(음악)가 손을 잡았다. 무대 디자인은 에스파 '위플래쉬'·아이브 '해야' 등의 K팝 뮤직비디오를 작업해온 아트디렉터 신호승이 맡았다.
전문가들은 전통의 틀을 깨려는 시도가 한국 무용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고 봤다. 심정민 무용 평론가는 “1980년대 유럽 무용계에서 장르를 허무는 실험이 유행처럼 퍼졌고 한국은 2000년대 들어 그 영향을 받았다”며 “20대~30대에 그런 변화를 체화한 현재 4050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무용 창작진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동시대성을 가미한 현대적인 작품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미디어도 지원 사격을 했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방영된 무용수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Mnet)는 OTT 티빙(TVING)에서 동시간 전체 라이브 채널 중 시청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방송 직후에는 장르별 무용수들의 댄스 영상이 화제가 됐는데, 특히 한국 무용 동영상 '왕의 기원: 태평성대'가 하루 만에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9위에 진입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최종 우승 역시 발레·현대 무용 전공자를 제치고 국립무용단 부수석 출신인 한국 무용수 최호종이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