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농구 1인자 “제 꿈은 코리안 르브론”

2025-04-16

“친구들이 ‘니엘’이라 줄여 불러요. 별명은 네이마르에요. 브라질 축구선수 닮았대요. 하하하”

16일 서울 용산고 체육관에서 만난 3학년생 포워드 에디 다니엘(18)은 협회장기 전국농구대회 남고부 우승 여운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지난 10일 무룡고와의 결승에서 25점·8리바운드를 올려 84-54 대승을 이끌며 용산고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지난달 춘계연맹전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우승과 최우수선수(MVP)를 싹쓸이했다.

용산중 시절엔 한 경기에서 49점·29리바운드를 기록한 적도 있다. 보법이 남다른 드리블로 밀고 들어가며 상대 수비를 무너뜨려 농구인들 사이에서 ‘탱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세범 용산고 코치는 “한국에 없는 ‘유니크(Unique·독특한)’한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니엘의 아버지는 영국인, 어머니는 한국인 성미혜(42)씨다. 지난 2007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외할아버지가 성경을 참고해 지었다. 다니엘은 “대한민국 국적자라 한국 여권만 소지하고 있다. 여섯 살 때 영국에서 3주간 지낸 적이 있는데, 외할머니께 ‘김치가 먹고 싶으니 한국에 돌아가자’고 조른 기억이 난다. 평소 삭힌 홍어도 잘 먹는다”고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곱슬머리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거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의 인종차별 발언을 들은 적도 있지만, 다니엘은 “상처가 되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며 개의치 않았다.

다니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며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운동 신경이 남달라 축구팀 코치와 농구팀 코치가 서로 데려가겠다며 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농구를 선택했지만, 친구들은 “저 피지컬에 축구를 계속 했다면 한국의 엘링 홀란(맨체스터시티)이 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다니엘은 초등학생 때 키가 1m81㎝에 달했지만 1m91㎝까지만 자랐다. 때문에 센터로 출발했다가 최근엔 포워드와 슈팅가드를 오간다. 약점으로 꼽힌 외곽슛 보완을 위해 기숙사에서 지내며 매일 새벽과 야간에 300~500개의 슛을 던진다. 롤 모델은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2m6㎝)다.

올해 용산고 졸업을 앞둔 다니엘은 대학 수시 6군데를 넣을 수 있다. ‘초고교급’으로 평가 받는 그에게 농구 명문 고려대와 연세대도 관심을 보인다. 프로행을 결정하면 신인 드래프트 없이 유소년 시절 우선 계약한 서울 SK의 유니폼을 입는다. 이 경우 프로농구 최초의 연고지명 선수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

다니엘은 “이달 연맹회장기까지 마친 뒤 5~6월쯤 최종 결정을 내릴 생각이다. 대학 진학과 프로행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올 시즌 MVP인 SK 안영준 선수를 좋아한다. ‘레이업슛 밖에 못 하는 선수’라는 과거의 부정적 평가를 딛고 당당히 프로농구 톱클래스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U-16(16세 이하) 농구대표팀 주장 출신인 다니엘은 지난해 U-18 아시아컵 일본전에서 17점을 넣어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다니엘은 “한일전을 지면 학교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면서 “한국 남자니 당연히 군대도 갈 것”이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미국·호주·중국으로 농구 단기 연수를 다녀온 그는 “여준석(23·곤자가대), 이현중(24·호주 알라와라) 형처럼 기회가 된다면 미국 무대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 다니엘은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 또는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이웃집 찰스) 촬영 중이었다. “나는 운동선수지만 말솜씨가 좋은 편”이라 언급한 그는 “은퇴 후엔 서장훈, 전태풍 형처럼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