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청년농 육성자금 파동은 우리 농정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냈다. 2024년 8000억원이던 육성자금이 2025년에는 6000억원으로 급감했다가 다시 4500억원이 추가되는 등 들쭉날쭉한 자금 운용이 청년들의 꿈을 짓밟았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농업직불금과 농업재해보험·농촌개발사업 등 주요 농정 대부분이 매년 예산에 따라 출렁이며 농업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올해는 농업수입안정보험까지 도입되면서 안정적 예산 확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공익직불제와 같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정책도 있다. 공익직불금 예산은 올해 3조4000억원까지 확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도 장기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농업법(Farm Bill)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5년마다 갱신되는 미국의 농업법은 단순한 정책 방향이 아닌, 구체적 실행 계획과 예산이 법제화된 종합 농정의 기본틀이다. 농가소득 지원, 작물보험, 농촌 개발, 영양 지원 프로그램, 산림 등 주요 정책분야에 대해 5년간의 예산이 확정돼 있어 정책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보장된다.
더욱 주목할 점은 미국 농업법의 개정 과정이다. 법 만료 2년 전부터 의회 주도로 각 주별 공청회가 시작돼 농민단체·소비자단체·환경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다. 미국 농무부(USDA)는 이를 바탕으로 향후 5년간의 농업·농촌 전망을 분석하고, 의회는 국가 재정 계획과 연계해 실현 가능한 정책과 예산을 법제화한다. 이러한 과정은 농정이 단순한 농민 지원을 넘어 국가 전체의 식량안보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정책이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현행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은 선언적 성격에 그치고 있어 실질적인 정책 이행을 담보하지 못한다. 매년 예산당국의 지갑 사정에 따라 핵심 농정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내년도 계획조차 세우기 어렵다.
특히 우리 농업이 당면한 도전과제들은 단년도 예산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농업기반시설 개선, 농촌의 인구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정주 여건 개선, 식량주권 확보를 위한 농지 보전과 인력 육성 등은 최소 5년 이상의 안정적인 투자가 필요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중장기 과제들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이제는 장기 플랜이 담긴 실효성 있는 농업기본법이 필요하다. 농가소득 안정, 농업재해 대응, 청년농 육성 등 핵심 농정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 내용과 예산을 법제화해야 한다. 국회가 주도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의 재정 계획과 연계해 실현 가능한 중장기 농정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국회 내에 ‘농정기본법 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여야 의원은 물론 농민단체·소비자단체·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논의 구조를 만들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법안을 다듬어가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중장기 재정 소요를 면밀히 분석해 실현 가능한 정책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예산 줄다리기와 그에 따른 농정 표류를 막으려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국회는 우리 농업의 미래를 좌우할 장기 플랜이 담긴 농업기본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흔들림 없는 농정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상현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