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구는 보더라인 먼쪽 하단 모서리에 걸리는 127㎞짜리 커브였다. SSG 김성욱 방망이 밑둥에 닿으며 파울이 됐다. 김성욱은 도전적으로 방망이를 돌렸다. 압박감에 ‘컨택’부터 하려는 스윙이 전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했다. 3-3이던 9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 통산 타율 0.236로 애버러지 히터와 거리가 먼 김성욱은 벤치에서 본인을 기용한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타석에 선 듯했다. 김성욱은 NC에서 뛴 지난해에도 타율은 0.204에 그쳤지만 홈런을 17개나 때렸다.
삼성 투수 후라도가 던진 다음 공이 김성욱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들었다. 한복판에서 살짝 몸쪽으로 치우친 149㎞짜리 패스트볼.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춰놨던 김성욱은 이미지 속 가상의 장면 그대로 방망이 중심에 공을 맞혔다. 왼쪽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10m짜리 솔로홈런. 11일 준플레이오프 문학 2차전의 엔딩 장면으로 홈런에 관한 최고 수식어인 ‘끝내기’를 붙였다.
가을야구는 ‘울렁증’과 싸움이기도 하다. 수비 실책이 큰 변수가 되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올해 가을야구는 ‘실책’보다 ‘실투’가 부각된다. 제구 실수로 한복판으로 밀려들어 가는 공만이 실투는 아니다. 경기 상황별, 타자 유형별로 실투는 달라진다. 더구나 올해 준플레이오프처럼 ‘홈런 절친형’ 문학과 대구구장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는 그에 맞는 볼배합이 필요할 때도 있다. 경기 후반, 주자 없는 가운데 1점 승부라면 더욱 그렇다.
김성욱은 SSG 유니폼을 입은 올해 정규시즌 132타석에만 들어선 가운데 홈런 2개를 쳤다. 8월1일 잠실 두산전에서 최원준의 패스트볼을 때렸고, 9월21일 문학 두산전에서 최승용의 패스트볼을 때려 담장 밖으로 넘겼다.
홈런의 비중이 커진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다.
정규시즌 1위가 결정된 것도 좁혀보면 홈런 1개 때문이었다. 지난 1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화-SSG전. 9회말 2사 후 터진 2개의 투런홈런 중 SSG 이율예의 끝내기 한방은 담장 위를 맞고 넘어간 비거리 99.5m짜리 홈런이었다. 홈플레이트에서 1·3루 연장선상 폴까지 거리 95m에 담장 높이도 2.4m로 낮은 문학구장을 제외하면 비거리 100m 미만의 홈런은 나오기 어렵다. 준플레이오프 3,4차전이 열리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역시 좌우중간 거리가 107m로 홈런 생산성이 높다. 배터리는 배터리대로, 벤치는 벤치대로, 또 타자는 타자대로 조금은 다른 야구를 계산해둬야 하는 무대다.

두 팀 모두 익숙한 그라운드를 밟고 있지만, 익숙함부터 경계하는 것이 승부의 첫 단추가 되고 있다. 지난 9일 준플레이오프 문학 1차전 1회초 나온 삼성 이재현의 선두타자 솔로홈런도 무대가 달랐다면 흘러가는 한 장면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SSG 화이트는 선발투수들이 흔히 경기의 시작을 알리듯 스트라이크존으로 초구 152㎞ 패스트볼을 던졌다. 패스트볼을 노리고 스윙하는 타자에게는 먹잇감 같은 한복판 살짝 높은 쪽. 이재현의 방망이 중심보다는 그립 쪽에 걸려 나간 타구는 좌측 담장을 간신히 넘어갔다.
지난 3월22일 개막 이후 정규시즌을 지나 포스트시즌까지 200일이 넘는 여정이 이어지고 있다. ‘200일 농사’의 성패가 ‘20㎝’ 비거리 차이로 갈릴 수 있는 시간이다.
야구는 어디서 해도 같다고 하지만, 그건 아주 긴 승부에서나 쓰는 말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또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야구는 달라진다. ‘다름’을 읽고 실행하는 팀이 축복받을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