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이로운 생존자들
스티브 브루사테 지음
김성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공룡은 경이롭다. 우리는 공룡에 대한 많은 책을 접한다. 새는 매혹적이다. 그들의 매력적인 자태를 묘사하는 사진과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포유류는? 우리가 속한 동물군인데도, 그 역사를 다룬 교양과학 서적을 거의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스티브 브루사테의 『경이로운 생존자들』(원제 The Rise and Reign of the Mammals)을 접하고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포유류의 역사에 대해 기억하는 바는 얼마 없다. 이를테면, 공룡 시대에는 공룡의 그늘 아래 숨어 살았고, 공룡이 멸종한 이후에야 번성했다는 것. 그리고 한때 검치호랑이나 매머드 같은 거대한 포유류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다 사라졌다는 정도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이러한 '상식'은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르다.

저자 브루사테는 고생물학계의 록스타이다. 열여덟에 유명한 화석들에 대한 책을 출판했고, 만 스물부터 화석분석 연구에 참여했다. 전문분야는 공룡. 수백번씩 인용된 논문이 수십편이다.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 자문으로 참가했고, 2020년 번역 출판된 그의 전작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원제 The Rise and Fall of the Dinosaurs)는 공룡을 다룬 수많은 교양과학서들의 최고봉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경이로운 생존자들』의 전반부는 포유류가 어떻게 출현했는지, 후반부는 그들이 어떻게 지구 생태계의 지배자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곳곳에 놀라운 사실들과 새로운 관점이 반짝인다.
예컨대 포유류로 이어지는 계통은 이미 고생대 초기에 형성되었고, 본격적인 포유류는 중생대 초기에 출현했다. 현대 포유류의 공통조상은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에 출현했다. 흔히들 몸집이 큰 공룡에 눌려 포유류가 몸집을 키우지 못했다고 여기지만, 저자는 포유류가 작은 몸집에 적합한 생태적 공간에 공룡들이 침입해오는 것을 막은 셈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이빨이 왜 중요한 화석인지도 저절로 납득된다. 포유류 계통은 턱근육을 지탱하는 두개골 구조 덕분에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려 정교하게 음식을 씹을 수 있었고, 이는 다양한 먹이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이갈이를 여러 번 하면 부정교합이 발생해 먹이 적응 능력을 감소시키는 문제가 생긴다. 이를 포유류는 유치와 영구치, 딱 두 번만 이가 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오늘날 치과 의사의 일거리는 중생대의 조상들이 마련해 놓은 셈이다.
젖샘은 화석으로 남지 않지만, 유치 화석의 구조를 보면 중생대부터 출생 직후에는 젖만 먹고 생존한 포유류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모유 수유를 하면 출생 이후 뇌와 신경계를 빠르게 키울 수 있다. 그래서 포유류가 똑똑하구나 생각했더니, 의외로 포유류 성체의 뇌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적이 많았고, 포유류들이 자주 ‘지능’보다는 ‘체력’을 활용해서 번성을 도모했고 한다. 통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21세기 들어 고생물학이 변화하는 모습도 포유류 이야기와 잘 엮여있다. DNA 기반 계통 분류가 도입되면서, 기존 해부학 중심의 분류는 새로운 지리적·분자적 기준에 따라 재정비되었다. 조상과 후손인 줄 알았던 것이 단순한 수렴진화의 사례로 밝혀지기도 한다. 화석을 CT 스캔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운동방식까지 재구성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도처에 삽입된 도판도 좋지만, 백미는 참고문헌이다. 서지사항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마치 수다 떠는 것처럼 책과 논문을 추천하고, 문헌이 어떤 부분에서 시대에 뒤떨어졌고, 활발한 논쟁과 의견 불일치가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참고문헌이 작은 활자로 인쇄된 점이 거의 유일한 불만이다. 새를 다룬 브루사테의 다음 작품이 곧 출판된다 하니 어서 번역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