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동에서 마주했던 죽음은 늘 나를 압도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곳의 공기, 소독약과 약품 냄새가 섞인 특유의 무게감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이제 막 진단을 받아 ‘희망’을 품고 있는 환자와 ‘죽음’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끼던 환자. 이 두 부류의 환자가 교묘히 겹쳐 지나가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쪽에선 ‘악성 종양’이라는 조직 검사 결과를 들은 누군가가 초기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입원했고, 다른 한쪽에선 피할 수 없는 상태 악화로 의식을 잃으며 생을 떠나가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곤 했다. 그런 광경이 겹칠 때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차올랐다. 희망으로 시작된 모든 순간이 언젠가는 마지막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종양이 후두 신경을 침범해 목소리가 늘 쉬어 있던 50대 초반 환자 한 분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 죽는다’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세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시한부에 가까운 선고를 받았음에도, 그는 매일 아침 복도를 돌았다. 이제 막 진단을 받고 무력감에 빠진 입원 환자에게는 “형님, 그렇게 힘이 없어서 어떡해요. 살아 있는 동안은 힘을 내야죠. 같이 한 바퀴 돌고 오실까요?”라며 먼저 손을 내밀곤 했다.
어느 날, 그는 옆 침상 환자에게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이미 내려진 선고는 받아들이는 거죠. 어찌 되었건 살아 있는 동안엔 행복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살아 있는 동안은 힘을 내야죠.”
우연히 듣게 된 그의 이 한마디는 내 귓가에 한참 동안 맴돌았다. 물론 그도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CT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기존 항암제로는 더는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동료 간호사에게 들으니 그날 밤 그는 복도를 서성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낮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그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 역시 두려움과 외로움을 홀로 삼키는 사람이었으리라. 그런데도 그는 먹는 항암제로 변경해 퇴원하는 날까지 “안녕히 계세요!”라며 환한 인사를 건넸다.
그 무렵,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환자도 있었다. 자정 무렵, 어스름한 불빛 아래 누워 있던 그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작고 마른 몸이었지만 커다란 눈망울은 멀리서도 선명했다. 혈압을 재기 위해 다가갈수록 그녀의 노래진 눈자위가 더욱 또렷이 보였다. 간 기능이 악화되어 생긴 황달 증상이었다. 그녀는 40대 중반의 간암 말기 환자로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그런 그녀를 아직 포기하지 못한 남편이 상주하고 있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하고 혈압측정기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가 내 손목을 확 잡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