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미국 영화 배우 겸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가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앞다퉈 애도 메시지를 내놓는 가운데 국내에선 고인이 생전에 출연하거나 감독한 영화들이 새삼 화제가 됐다. 메릴 스트립(76)과 나란히 남녀 주인공을 맡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도 그중 하나였다.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무대로 미국인 미남·미녀 배우가 열연을 펼친 작품으로만 기억하기 쉬운데, 덴마크 여성 작가 카렌 블릭센(필명 아이작 디네센·1885∼1962)이 쓴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다. 극중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여주인공 ‘카렌’이 실은 작가 본인을 형상화한 캐릭터인 셈이다. 영화 속에서 남편도, 흠모했던 남성도 모두 잃은 카렌이 아프리카를 떠나 향하는 곳도 고국인 덴마크다.

면적이 한반도의 10배나 되는 그린란드는 ‘작은 대륙’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으나 공식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많은 한국인이 그린란드를 덴마크의 ‘식민지’로 알고 있지만, 외교·국방 분야를 제외하면 덴마크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 ‘자치령’이다. 지난 3월 그린란드 자치정부 구성을 위해 실시된 총선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국내 한 일간지는 관련 사진을 1면에 게재하며 ‘지금까지 이곳 선거가 이렇게 관심 끈 적 있던가’라는 제목까지 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삼고 싶다’는 노골적인 의사를 밝힌 직후였기 때문이다. 물론 농담으로 여겨 웃어 넘긴 이도 많을 것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래 아직까지 그린란드 보유 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덴마크는 독일이란 강대국과 국경을 접한 탓에 역사적으로 곤욕을 치렀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4월에는 나치 독일에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1944년 6월 미국, 영국 등 연합국 군대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 후에도 1년 가까이 덴마크는 독일의 피점령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치 세력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5월에야 해방의 기쁨을 맛봤다. 2차대전의 쓰라린 경험은 덴마크 국민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웠다. 1949년 미국 중심의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출범 당시 덴마크는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했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덴마크는 가장 먼저 한국을 위한 의료 지원 의사를 밝히고 병원선 ‘유틀란디아’(Jutlandia)를 보냈다.

피터 율-옌센 의원 등으로 구성된 덴마크 의회 사절단이 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이 6·25 전쟁 당시 덴마크의 의료지원단 파견에 감사의 뜻을 표하자 의원들은 유틀란디아호를 들어 “자유와 인권을 함께 지킨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협력을 더욱 강화하자”고 화답했다. 1951년 6월 정전협정 체결에 관한 논의가 막 시작됐을 때의 일이다. 당시 유틀란디아호는 강원 원산 앞바다에 있었는데, 유엔군 지휘부는 중공군 및 북한군에 “유틀란디아 함상에서 정전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공산 진영은 이를 거절하며 경기 개성을 회담 장소로 제시했고, 결국 개성이 낙점을 받았다. ‘유틀란디아 정전 회담이 성사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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