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도 대물림…“출산 후 정상 혈당 돌아와도, 자녀 건강까지 위협”[헬시타임]

2025-10-23

임신 중 당뇨병 진단을 받는 여성이 10년새 63%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모는 물론 자녀 세대의 평생 건강을 위협하는 공중보건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정부가 후속 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당뇨병학회와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22일 서울 광화문 HJ비즈니스센터에서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임신당뇨병 팩트시트' 특별판을 발표했다. 임신당뇨병은 임신으로 인한 생리적 변화에 의해 임신 중 처음 내당능장애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엄밀히는 임신 전에 이미 당뇨병이 있다가 임신기간 발견된 경우와는 다른 개념이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국내 임신당뇨병 유병률은 2013년 7.6%에서 2023년 12.4%로 2배 가까이 뛰었다. 학계는 고령 임신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전체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은 2013년 31.8세에서 2023년 33.5세로 높아졌다. 40세 이상 산모의 경우 5명 중 1명(18.6%)이 임신중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20~30대 젊은 연령층의 비만율 증가도 임신당뇨병 유병률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용호 대한당뇨병학회 총무이사(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 30kg/m² 이상인 비만의 경우 임신당뇨병 유병률이 23.5%로 정상 체중 그룹의 9.9%에 비해 2.37배 높았다.

임신하면 태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등에 의해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진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추가로 인슐린이 분비돼야 하는데 충분하지 않으면 혈액 내 포도당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 대다수 산모는 출산 후 혈당 수치가 정상범위로 돌아간다. 문제는 혈당 수치가 정상화됐다고 해서 당뇨병 발병 전과 동일하진 않다는 점이다. 해외 다수 연구에 따르면 임신당뇨병이 출산 후 산모 뿐 아니라 자녀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임신성 당뇨병을 겪은 여성은 정상 혈당 산모에 비해 향후 2형 당뇨병이 발생할 위험이 6.1배나 높았으며,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도 1.5배 증가했다. 그럼에도 임신당뇨병 산모의 과반수는 추적검사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임신당뇨병에 관한 근거자료가 미비하다 보니 지원 제도조차 전무했다. 국립보건연구원이 2024년부터 전국의 9개 병원과 협력해 '임신성 당뇨병 코호트' 연구에 착수한 배경이다. 올해부턴 산모 뿐만 아니라 배우자, 자녀까지 포함하는 '가계 코호트'로 확대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국내 임신부 2227명을 대상으로 한 임신성 당뇨 코호트 선행연구에 따르면 임신 초기에 영양 섭취가 가장 불균형했던 그룹(하위 25%)은 영양 상태가 가장 양호했던 그룹에 비해 임신중 당뇨병 발생 위험이 1.82배 높았다. 특히 비타민 B6, 나이아신(비타민 B3), 칼슘 섭취가 권장량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임신중 당뇨병 위험이 각각 1.62배, 1.54배, 1.39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과제의 책임자인 류현미 분당차여성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특정 영양소의 결핍 뿐 아니라 전반적인 식단의 질과 영양 균형이 임신중 당뇨병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의료급여 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이 임신당뇨병 발생 위험에 더욱 노출돼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임신 중 발생한 당뇨병이 다음 세대로 대물림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동연구자인 곽수헌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팀이 2009~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임신당뇨병 산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성장 후 제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약 1.5배 높았다. 특히 임신 중 인슐린 치료가 필요했던 산모의 자녀는 2형 당뇨병과 1형 당뇨병 위험이 각각 4.6배, 2.2배 증가했다. 반면 일반적인 임신당뇨병은 자녀의 1형 당뇨병 발생과 뚜렷한 연관이 없었다. 제왕절개 분만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도 자녀의 당뇨병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임신 전부터 출산 이후까지 체계적으로 당뇨병 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차봉수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임신 전부터 체계적인 건강관리가 필수적"이라며 "임신당뇨병 진단 시 출산 후에도 꾸준한 검사와 관리를 통해 본인과 자녀의 미래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임신중 당뇨병은 한 세대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의 건강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질환"이라며 "국가 코호트 연구를 통해 임신성 당뇨병의 위험을 조기에 예측하고 효과적으로 중재할 수 있는 한국형 관리 프로토콜을 개발해 미래 세대의 건강을 지키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