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기시감은 대부분 불쾌한 과거를 소환할까. 아마도 선의는 참신한 상상력으로 갱신되지만 악의는 지리멸렬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리라.
“최근 신남성연대는 이러한 공백을 파고들어 댓글란을 점유한다. … 가짜뉴스를 통한 선동이자… 믿음을 적극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다. … 암묵적 공공선에 대한 약속을 파기하는 효과, 그리고 비슷한 …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를 낸다. … 지난 2020년 네이버 댓글 개편에 대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미디어 정책 리포트’에선 ‘대다수 이용자들은 전체 댓글을 10개 이내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순위에 들기 위한 조작의 가능성’이 있어 최상위 댓글 노출을 고정이 아닌 변동형으로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젠 조작의 가능성 문제가 아니라 대놓고 조작이 이뤄지는 걸 모두가 목도하는 중이다.”
윗글은 최근 윤석열의 내란 시도 이후 대표적 반여성주의 단체인 신남성연대가 텔레그램을 통해 특정 기사들에 대해 내란 옹호 댓글 공작을 펼치는 자칭 ‘여론 정화’에 대한 글이 아니다. 2021년 8월 이 지면에서, 신남성연대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성차별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포털 기사나 웹툰에 여성혐오 댓글을 달고 ‘좋아요’ 추천을 받아 상위 노출되는 것에 대해 비판한 내 4년 전 칼럼이다. 당시 “현재 차별주의자들이 네이버 댓글란에서 벌이고 있는 건 기술적 빈틈에 대한 해킹이 아닌 제도적 빈틈을 노린 해킹”이라 비판한 그때 상황이, 얼마 전 극우 유튜브 탐방기를 담은 시사IN 기사에서의 신남성연대의 댓글 조작에 대한 “법의 빈틈을 악용한 여론조작 현장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문장에서도 반복된다. 4년 전 칼럼 말미 “차별주의자들과 방관하는 포털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지지부진한 국회를 비난하겠다”고 했으며, 지금껏 그 세 가지는 변하지 않았고, 결국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거 봐라 내가 뭐랬냐고 말하고 싶진 않다(약간의 유혹은 느낀다). 다만 몇 년을 사이에 두고 반복되는 이 두 사건의 상동성과 연관성을 함께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내란 사태 이후 온오프라인을 통해 구체화되는 2030 남성들의 파시즘에 대해 온전히 다룰 수 없다. 여성혐오를 먹고 자란 파시즘을.
지난 1월 1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난동은 내란을 시도한 헌정 파괴 지도자의 권위에 기대 법치주의를 폭력으로 훼손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파시스트들의 테러 행위였다. 이번 사태에서도 신남성연대의 존재감은 여전한데,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는 본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폭동 촬영 영상이 채증 영상으로 쓰일 수 있으니 유튜버들은 영상을 내려야 한다고 지시하는 것을 비롯해, 또 다시 댓글 부대를 동원해 언론사(특히 JTBC)가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거나 경찰이 폭동을 유도했다는 댓글로 폭동 관련 기사들을 점령했다. 그동안 여성혐오를 대표 상품 삼아 노조 혐오, 좌파 혐오 등을 끼워 팔며 2030 남성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한 신남성연대의 존재와, 이번 폭동으로 체포된 아흔 명 중 20대와 30대가 절반 이상이며 그들 다수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불가분 관계다. 신남성연대의 여론 조작이 정확히 4년 전에 하던 짓을 범위만 넓혀 반복하는 것이라면, 이에 동조하는 젊은 남성들이 오프라인에서 자신감을 갖고 극우 성향을 드러내는 것 역시 그 4년 동안 스스로를 ‘아스팔트의 왕’이라 자처하는 배인규를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배설한 폭력의 경험 덕분이다. 가령 배인규와 그 똘마니들은 페미니스트 모임 팀 해일의 시위마다 현장을 찾아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애들” 등의 말로 겁박하고 물총을 쏘는 등의 집단 괴롭힘을 하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다가 지난해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상대방을 종북으로 몰아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낄낄대는 남성들의 경험이 이번 사태와 무관할 수 있는가? 지난 윤석열 탄핵 시위에서 2030 여성들의 높은 참여율에 대해 그동안 광장에서 누적된 페미니즘 활동의 경험을 누락하고 이야기하는 게 엇나간 분석이듯, 이번 폭동에서 2030 남성들의 참여에 대해 역시 광장에서 경험한 반여성주의 운동의 경험을 누락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엉뚱한 분석이다.
우리가 이번 테러 사태와 2030 남성의 참여를 우연적 사건으로 봐선 안 되는 것만큼, 지난 4년간 신남성연대를 비롯한 온라인 성차별 세력과 그 언어를 방관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극우 세력의 담론 다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조차 반여성주의에 대해선 ‘한국 페미니즘이 왜곡된 건 사실이지’라며 회색지대의 신성동맹을 맺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극우 파시즘을 발아하기 가장 안전하고 비옥한 밭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가령 노동 르포 작가에서 페미니즘 비판 전문가가 된 이선옥은 앞서 인용한 4년 전 칼럼이 나오고 한 달 뒤쯤 신남성연대의 정책 위반에 의한 유튜브 채널 삭제를 다루며 “나는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고 말하는 채널이 존재하는 사회보다,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는 말이 삭제되는 사회가 더 위험하다”며 이건 “좌파식 전체주의냐 우파식 전체주의냐의 차이일 뿐”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보라. 실제로 전체주의 폭도가 튀어나온 건 그가 비판한 “신남성연대 채널 폭파에 축배를 드는” 진보 좌파 혹은 페미니스트 진영에서가 아니라 적극적 무관심 속에서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란 말을 해도 될 자유를 누리던 차별주의자 진영이다. ‘페미, 좌빨’에 대한 혐오의 언어는 단순히 나와 다른 의견이기 때문에 삭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취약 범주에 속한 이들이 그럼에도 사회 안에서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는 최소한의 기대와 신뢰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훼손하기에 삭제해야 하는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혐오 선동에 그러했어야 했듯.
윤석열 내란 하루 전, 이선옥을 불러 공학 전환에 대한 동덕여대 학생들의 학내 투쟁을 페미니즘 때문에 벌어진 책임 없는 폭력 시위로 비하한 진보 성향 유튜브 <매불쇼>가 정작 최근 방송에서 진정한 폭력 시위이자 테러인 1.19 법원 폭동을 파시즘이라 규정하고 분석하면서도 젊은 극우의 핵심 담론인 여성혐오, 혹은 안티페미니즘(사실 그게 그건데 신남성연대는 후자를 주장하며 전자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선옥의 입을 빌려 동덕여대 사태로 본 현대 젊은 여성의 행태를 ‘해줘, 내놔, 아몰랑’이라 하고, 행위자로서는 존재하지만 책임자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게 페미니즘의 논리라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탄핵 정국에서 <매불쇼>로 상징되는 중장년 진보 혹은 리버럴 남성들이야말로 광장에 나온 젊은 여성에게 참여‘해줘’, 지지율 ‘내놔’, 자신들의 과거 여성혐오에 대해 ‘아몰랑’이라 하고 있지 않은가. 행위자로서 존재하지만 책임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광장에 나온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 어울리는가, 그동안 페미니즘 비판으로 적당히 진보와 보수 사이 회색지대에서 편안함을 누리다가 정작 안티페미니즘에 경도된 젊은 파시스트들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가. 앞서 4년 전 쓴 칼럼에서의 우려가 맞아떨어진 걸 두고 ‘거 봐라 내가 뭐랬냐’고 으스대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그런 우려에도 여성혐오의 언어와 유희를 묵인하다가 이제 와 폭동을 보고 놀라는 이들에게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나?
<위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