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자리의 방랑자들

2025-03-26

겨울밤엔 지붕 위 동남쪽 하늘에 오리온자리가 자주 보인다. 중앙의 나란한 세 별은 그리스인들이 사냥꾼의 허리띠로 인식한 별자리의 상징이다. 친숙한 만큼 천문학자들에게도 오리온자리는 매력적인 관측 대상이다. 특히 젊은 별들이 활발히 탄생하는 오리온성운은 별과 행성의 형성 원리를 밝힐 천혜의 실험실이다. 자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비밀을 허락하는 걸까? 역대 최강의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확인한 오리온성운에선 활발히 탄생하는 별들과 함께 수백 개의 떠돌이 행성도 포착됐다. 지구처럼 중력으로 묶여 별을 도는 행성과 다르게 떠돌이 행성은 특정 별에 얽히지 않으며 우주를 방랑자처럼 떠도는 존재다.

1992년 태양계 밖 다른 별을 도는 외계행성이 처음 확인된 후 현재까지 6000여 개의 외계행성이 발견됐다. 별들로 가득한 은하는 별만큼 많은 외계행성으로 뒤덮인 세상이었다. 그런데 21세기 초부터 확인되기 시작한 떠돌이 행성은 우리 은하에만 무려 수십억 개에서 수 조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주는 별과 행성의 연합체인 항성계의 세상이자 고독을 즐기는 방랑자들의 무대인 셈이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꽤 큰 떠돌이 행성의 기상 상태를 관측하거나 일반상대성이론을 활용해 지구 크기의 떠돌이 행성도 발견해낸다. 2027년 발사될 나사의 로만(Roman) 우주망원경이 목표대로 수백 개의 지구형 떠돌이 행성을 발견한다면 이는 은하 속 떠돌이 행성의 수나 행성 형성의 원리를 밝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예전에 오리온자리를 보면 갓 태어난 별들의 에너지로 찬란히 빛나는 성운과 별 주위 원반 속에서 모습을 갖춰가는 행성들이 상상되었다. 요즘의 오리온자리는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한 떠돌이 행성들의 외로움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우주의 어떤 비밀을 인류에게 보여줄까? 21세기는 바야흐로 인류가 우주의 거대한 서사시를 새롭게 읽어낼 시기다.

고재현 한림대 반도체·디스플레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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