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SF다···‘범 내려온다’ 이날치가 만들어낸 또 새로운 세계

2024-11-17

이날치 프로듀서 장영규 음악감독 인터뷰

“‘범 내려온다’ 또 만들 생각없어...더 새로운 것 보여줘야”

2집 목표는 ‘음악으로 인정받는 것’

판소리 ‘수궁가’를 편곡한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밴드 이날치(안이호, 최수인, 전효정, 장영규, 이용진, 노디)가 전혀 다른 세계관을 담은 2집 <낮은 신과 잡종들>로 돌아왔다. 이번엔 SF다. 토끼, 자라와 함께 물과 뭍을 누비던 밴드는 이번 앨범에선 멸망한 세계 속을 헤맨다. ‘범 내려온다’의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왜 이번엔 판소리가 아닌 다른 길을 택했을까.

이날치의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장영규 음악감독(56)은 “또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를 하는 것은 너무 쉬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장 감독을 만났다.

‘수궁가’로 뜬 밴드가 이번엔 다른 판소리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으로 돌아왔다고 하면 앨범 홍보를 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장 감독은 처음부터 또 다른 판소리로 작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많은 사람이 ‘범 내려온다’ 같은 게 또 나올 수 있냐, 없냐로 우리를 판단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우린 그런 걸 다시 만들 생각이 없어요. 더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소리 다섯 바탕은 다섯 번 하면 끝나잖아요. 너무 뻔하죠. 어렵더라도 판소리 바탕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고민 끝에 아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곡으로 쓰기로 했다. 세계관을 만들 사람이 필요했다. 장 감독은 연극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음악 작업 때 알게 된 김연재 희곡 작가를 섭외했다. 김 작가는 지금 이날치 2집 앨범의 세계관을 한 편의 SF소설로 쓰고 있다.

소설은 아직 완성 전이지만, 이야기 구조는 대략 이렇다. 어느 이름없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은 전쟁과 폭력으로 파괴된다. 이곳에 살던 소녀 ‘더미’는 미쳐버린 개 ‘자루’와 함께 마을을 되살리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모험 중 왕에게 납치된 정령, 세상의 선함을 지탱하는 36명의 정직한 인간, 미래만 아는 카산드라, 온몸이 조각난 마고할미, 세상에 한 번 난 것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4000개의 눈과 귀를 가진 황소를 만난다.

2집 앨범 <낮은 신과 잡종들>에는 이 이야기가 12곡으로 만들어져 실린다. 지난 5일 공개된 ‘봐봐요 봐봐요’와 ‘발밑을 조심해’를 시작으로 내년 여름까지 매달 1~2곡씩 공개된다.

공개된 두 곡은 각각 이야기의 중·후반부 서사에 해당한다. 김 작가는 작사에도 참여했다. 김 작가가 가사를 쓰면 밴드의 보컬 안이호가 ‘판소리 스타일’로 다시 바꿨다. “그냥 가요면 작사를 할 때 본인이 불러보면서 하면 되는데, 판소리다 보니 작가님이 할 수가 없어요. 작사에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어요.”

‘봐봐요 봐봐요’ 뮤직비디오에는 ‘범 내려온다’ 때 이날치와 성공적 협업을 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출연한다. ‘앰비규어스’와의 협업 역시 처음엔 안 하려고 했다. 장 감독은 “1집 때 두 팀이 너무 함께 주목을 받았다. 당분간 ‘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서로 했다”고 말했다. 2집 발매 일정이 계속 연기되며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협업에 대한 부담도 서서히 줄었다. “다시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요. ‘남들이 무슨 상관이냐, 우리만 재밌으면 되지.’ 1집 때도 서로 합을 맞추려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어요. ‘알아서 준비해오자’ 하고 촬영장에서 만났거든요. 이번에도 그렇게 했어요. 춤 딱 3번 추고 끝냈어요.”

내용은 SF, 음악은 신스팝, 보컬은 소리꾼, 뮤직비디오는 현대무용과 애니메이션. 이날치에는 모든 게 뒤섞여 있다. 장 감독은 “장르의 경계는 무너진지 오래다. 저희를 어떤 장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그냥 대중음악, 팝이다”라고 했다.

전위적 음악을 하는 어어부 프로젝트, 민요 록밴드 씽씽 등 장 감독은 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것들을 섞어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어릴 때부터 설치미술, 무용 등 다른 분야 사람들과 섞여 지냈던 경험이 뿌리가 됐다. “전 그냥 현재를 살고 있어요. 씽씽이 깨진 뒤 씽씽을 뛰어넘는 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이제 끝인가보다’ 했는데 우연히 이날치가 만들어졌어요. 이날치가 있는 동안엔 이날치의 작업을 하는 거고, 그러다 끝나면 또 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을까요. 먼 계획 세우는 것을 싫어해요.”

당장 2집의 목표는 ‘음악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날치는 1집 때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크로스오버 음반’ ‘최우수 모던록 노래’를 수상했다. 이런 그룹의 목표가 음악적 인정이라는 것이 다소 의아하지만, 장 감독은 단호했다. 1집 때 성과는 밴드가 갑자기 ‘화제의 인물’이 되어서 얻은 결과일 뿐, 음악적 성취로만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음악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데 그때 광고도 엄청나게 찍었거든요? 그건 음악 때문은 아니었어요. 거품은 거품이에요. 거품을 다른 거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거품은 다 걷어졌으니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발전하고, 계속 활동할 수 있는 팀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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