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설 연휴도 끝이 났고, 2025년 을사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여가 넘었다. 그제가 입춘이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올 것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라더니 아직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한겨울 밤처럼 춥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기만 하다.
임시 공휴일까지 포함된 긴 연휴의 설이었지만 실제 느껴지는 명절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제2기 트럼프 시대가 시작되면서 국제정세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은 방향성을 잃고 멈춰 서있다.
대통령의 탄핵 심판으로 사실상 모든 중앙정부의 정책과 사업은 바닥에 엎드려 숨만 쉬고 있다. 갈등을 수습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정치권에서는 타협과 이해의 정치는 실종되고 본인들의 이익만을 앞세운 대립과 혐오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극단주의에 빠져서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분열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처럼 새해인데도 지난해 12월 계엄선포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과 그 여파는 새해의 희망까지 꺾어 버리고, 우리 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불안과 혼란들로 시작된 새해지만 2025년은 경상북도가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경상북도는 2005년 부산에 이어 20년 만에 APEC 정상회의를 천년고도 경주에서 개최한다.
올해 10월 말 경주에서 진행되는 정상회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 등을 포함한 21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비롯한 세계 500대 기업들의 최고 관계자 초청도 계획하고 있다.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다. 경제와 외교를 이끄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들이 경주에 모여 세계 경제의 미래를 논의하게 된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 경상북도를, 그리고 경주를 주목하고 지켜보게 된다. 이번 APEC 정상회담을 경상북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APEC 정상회담이 경주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경주는 고대 신라의 수도였던 도시로서, 천 년을 이어온 문화유산과 전통을 자랑한다. 세계의 정상들이 경주에서 회담을 이어가고, 우리는 전 세계에 경북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잠재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주가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역사문화 도시를 넘어서, 세계의 역사 문화도시로, 나아가 글로벌 경제 협력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신라 시대의 장군 장보고는 우리나라보다 사실 중국에서 더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신라 흥덕왕 때 청해진(淸海鎭)을 만들어 당시의 해상 국제무역을 주도했다. 신라와 당나라·일본을 잇는 해상교통로의 요지였던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먼저 해적을 소탕해 서남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이 해상권을 토대로 당·신라·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을 주도했다. 또한, 당나라와 일본에 흩어져 살고 있던 신라 유민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청해진을 동아시아의 무역 허브로 만들어 당나라와 일본뿐만 아니라 발해와 탐라, 우산국, 참파, 스리위자야, 마타람 왕국, 크메르 제국 등 동양의 많은 국가와 무역을 하였다. 이미 1200년 전에 신라는 국제적 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국가가 어려울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던 경북이 가지고 있는 저력에는 이러한 역사적 DNA가 밑바탕이 됐다.
이번 APEC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민들, 특히 경주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경북도민 모두가 협력하여 APEC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에게 경북만의 정(情)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APEC 정상들이 경주에 발을 들여놓을 때, 지역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도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그들을 대하는 진정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
APEC 정상회담이 경북이 세계와 소통하는 중요한 기회임을 잊지 말고, 우리 모두가 작은 부분에서부터 최선을 다해 준비에 임한다면 경북은 2025년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우뚝 설 것이다. 혼란의 시대에 늘 앞장서서 고난을 극복해왔던 우리 경북의 저력을 이번에도 보여줄 것이라 확신한다.
어둡게 시작한 을사년 2025년이지만 어느해보다 찬란하게 마무리하는 2025년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