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세먼지에 길 잃는다" 연구팀 경고한 '꿀벌 멸종' 시나리오

2024-10-29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김모(31)씨는 지난 주말 서울 근교로 가을 나들이를 갔다가 이렇게 말했다. 알록달록 코스모스 산책길에서 파리와 모기를 찾기는 쉬워도 꿀벌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의 궁금증의 실마리가 될 만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 연구팀은 지난 24일 초미세먼지(PM2.5)가 빛 정보를 감소시켜 꿀벌의 정상적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했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 ‘대기 중 미세먼지 상승에 따른 빛 선형 편광 감소’는 지난 9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지구와 환경’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2018~2021년 구름 한 점 떠 있지 않았던 날의 하늘을 선형 편광 필터가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해 40개의 샘플을 얻었다. 구름이나 수증기 없이 순수 미세먼지 입자가 선형 편광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편광은 전기장 또는 자기장의 방향이 일정하게 진동하는 빛을 말하는데 곤충 중에는 ‘선형 편광 신호’에 의존해 방향을 찾는 경우가 많다. 꿀벌도 여기에 포함된다.

40개의 샘플을 수치화해 분석한 결과 초미세먼지 농도와 선형 편광도 감소 사이의 정량적 관계가 나타났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꿀벌이 볼 수 있는 선형 편광 영역이 줄어든 것이다. 예를 들어 초미세먼지가 100㎍/㎥에서 200㎍/㎥로 늘어날 때 편광 영역은 약 15% 정도 감소했다.

앞서 연구팀은 지난 2월 세계자연기금(WWF) 보고서에서 일벌 2500마리에게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를 부착해 벌의 활동 시간을 추적한 결과, 초미세먼지가 130㎍/㎥ 이상 치솟은 날에는 평균 먹이 탐색 활동 시간이 기존 45분에서 77분으로 1.7배 늘어난다고 밝힌 바 있다. ‘대기 오염이 증가할수록 일벌의 방향 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는 가설을 확인한 것인데 전제가 되는 초미세먼지와 선형 편광도의 관계를 실측을 통해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 교수는 “도시오염물질이 광학적 정보를 소멸시킬 수 있다고 막연히 추정해오던 것을 최초로 정량화했다”며 “초미세먼지가 꿀벌에게 치명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결국 개체 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꿀벌 수 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2000년대 중반부터 꿀벌군집붕괴현상(CDC·Colony Collapse Disorder)이 보고되기 시작해 2018년 유엔(UN)은 5월 20일을 ‘세계 벌의 날’로 지정했다. 국내에서는 2022년 초 사육 꿀벌 39만 봉군(약 78억마리)이 폐사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이듬해 8000개 농가의 벌통 중 60.9%에서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

꿀벌의 감소는 인류의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벌의 수분(受粉) 매개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벌이 길을 잃어 수분을 제대로 못 하면 세계 식량 위기가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연구팀이 전 세계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와 이번 연구 결과 값을 접목해 2050년 꿀벌의 시야 변화를 예상해봤다. 그 결과 인도와 중국에서 꿀벌이 ‘길을 찾지 못하는 영역’이 가장 크게 늘었다. 인도는 2050년에 2010년 대비 위험 면적이 5배 늘어 260만㎢(서울 4296배)의 식생토가 위협을 받게 되고, 중국의 위험면적은 2010년 대비 2050년에 1.13배 늘어 520만㎢(서울 8592배)가 되는 것으로 예측됐다.

정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꿀벌 멸종의 다양한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며 “이 상태라면 2050년 기온 상승, 폭우, 말벌 수 증가 등 복합적 이유로 국내에서 꿀벌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초미세먼지 외 꿀벌 수 감소와 다양한 원인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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