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8 대입개편은 제도 변화를 넘어 '공부의 방향'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택과목이 사라지고, 내신은 5등급·서술형으로 전환되면서 학생들의 공부 방법도 암기 중심에서 사고·설명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입시는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떻게 사고하고 연결하는지 묻는다. 문·이과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고력·표현력·융합력이 핵심 역량으로 부상한다. 물론, 아직까지 대입 개편안에서 수능의 형식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대다수 입시 전문가들은 공부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에듀플러스는 '2028 대입 대전환' 기획을 통해 인공지능(AI) 시대, 공부의 정의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으며 학교와 학생, 대학이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이와 함께 공부의 본질이 암기에서 사유·논증·균형·기록으로 이동하는 변화의 흐름을 조명한다.
◇선택이 사라진 시대, 공부의 본질이 바뀐다
교육 전문가들은 '통합형 수능'이 흔히 문·이과 통합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지만, 실제 의미는 과목 통합을 넘어 학문 간 융합의 기초 역량을 평가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문·이과 경계를 허무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이 서로 다른 학문을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는 '융합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김주아 한국교육개발원(KEDI) 선임연구위원은 “통합형 수능은 전공별 지식 암기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과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며 “국어·수학·과학·사회 등 다양한 교과의 개념을 결합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민수 서울대 사범대 생물학과 교수는 “이번 개편의 본질은 대학에서 공부할 때 필요한 역량을 중심으로 평가를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5지선다형 가운데 답을 고르는 시험은 이제 더 이상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 해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실 안에서 시작된 공부의 전환
이런 변화의 방향은 교실에서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학교 현장은 지식 암기 중심 수업에서 사고력과 융합적 탐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화 중이다. 서울 성신여고는 올해부터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영재반 수업을 융합 교과로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영재반은 과학 수업 중심으로 운영돼 과학 교사가 주로 맡아왔지만, 올해는 국어 교사가 새롭게 책임을 맡았다. 영재반 수업에서 수학·과학뿐 아니라 국어 등 다른 교과와의 융합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림마이스터고 또한 융합 교육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국어 수업 시간에 AI를 활용해 학생들이 기후 변화 문제, 리터러시 격차 등 다양한 수업 주제에 관해 정보를 조사해 탐구 보고서와 앱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 국어 시간에 정보, 과학 과목의 요소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대형 미림마이스터고 교사는 “교과서 중심의 문제풀이식 수업에 비해, 국어와 과학 등 융합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분석·탐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수업 태도와 호기심이 모두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에는 혼란도 따른다. 정답을 맞히는 공부보다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공부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보니 학생들이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배경지식과 사고의 폭이 좁으면 창의적 발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독서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다양한 학문을 융합하려면 기초 학문과 개념을 깊이 이해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깊이 있는 학습'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수정 성신여고 교사는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은 지식을 넘어서 삶과 연계된 깊이 있는 학습”이라며 “앞으로의 학생들은 자신의 삶과 연결해 진정으로 필요하고 쓸모 있는 것을 배워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민수 서울대 교수는 “공부는 더 이상 '읽고 외우는 일'이 아니라 '덮고 떠올리는 일'이 됐다”면서 “문제를 푸는 힘은 기억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꺼내 연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과정 중심 평가'도 확대되는 추세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할 경우, 단계별 수행 과정 전체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한 경기도 일반고 교사는 “전반적으로 수업과 평가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을 학생들도 체감하고 있다”면서 “일반계고 학생도 대입 수시를 지원하려면 포트폴리오가 중요하기 때문에 수업과정과 기록 등에 신경을 쓴다”고 했다.
대학도 2028 대입 개편에 따른 신입생 선발, 수업 등에 변화를 주고 있다. 숭실대의 경우, 2년 전 교양 체계를 새롭게 정비했다. 문·이과 장벽이 사라지면서, 고교 필수 과목을 이수하지 못한 신입생을 위한 '브릿지 코스' 강화 방안이다.
조상훈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는 “사고력·논증력 중심으로 전환 중인 고교 교육 과정뿐 아니라, AI 등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가 대학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교수법과 대학의 교육 철학, 수업 방식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의 역할도 지식 전달에서 코칭으로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능 영향력 벗어나야 진짜 변화 온다
최근 서울대·경희대 등 2028학년도 대입 개편과 관련한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내신 5등급 도입 등으로 변별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최상위권 대학의 경우는 평가 요소를 다양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조상훈 숭실대 교수는 “교과 전형에서도 모든 과목을 정량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니 학생부 전형' 형태와 같은 정성평가 도입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수험생 부담을 늘리려는 의도라기보다 개정 교육과정에 맞는 성장 중심 평가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도 변화와 수업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이 교육 개혁보다는 대입의 안정성 확보에 초점을 둔 조정안이라고 평가한다. 수능의 영향력이 여전히 절대적인 상황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 문제풀이 중심 수업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창의력·탐구력 중심의 평가가 정착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내신 5등급제와 서술형 확대는 경쟁 완화와 성취 중심 평가로의 전환을 지향하지만, 상대평가 병기 구조가 유지되는 한 변별력 확보 부담이 남아 교사들이 탐구형 수업을 설계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김주아 KEDI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수능·내신·수행평가는 서로 다른 방향의 평가 체계로 작동해, 수업과 평가, 대입이 한 방향으로 연계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면서 “교육과정·수업·평가·대입이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설계돼야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수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