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주의 의료와 사회-9]
아픔, 돌봄, 죽음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어. 그만큼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성큼 들어선 걸 보여주는 듯해. 예로부터 인간의 생애를 짧은 말로 생로병사(生老病死)라 하는 걸 생각하면, 이 주제들은 애초에 새로운 이야깃거리는 아니야. 어떤 사람에게는 이미 일상을 묵직하게 차지한 말일 수도 있어.
사람 몸은 정말 신기해. 의과대학을 다닐 때 해부학으로 몸의 생김새와 짜임새를, 생리학으로 몸 안 장기의 활동을 배웠어. 뇌, 심장, 콩팥, 간, 위장 등이 저마다 독특한 조직을 갖추고 자기 활동을 해. 뇌에서 나온 신경 다발이 길게 온몸으로 퍼져서 정보를 주고받고, 주먹만 한 심장이 힘찬 동작으로 몸 전체에 혈액이 돌게 하고, 그보다 약간 작은 콩팥 두 개는 혈액을 곱게 걸러서 오줌을 만들어. 그 모든 기능이 서로 얽혀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뤄.
눈부시게 뛰어난 조직체인 몸은, 그렇기 때문에 위태로워. 뭔 말이냐고? 한 곳에 병이 나면 전체가 위기를 맞는 거야. 어느 구석진 귀퉁이에 생긴 병에도 몸 전체가 아프고 활동에 곤란을 일으켜. 병이 나은 뒤에 남는 흔적은 몸을 달라지게 만들어. 가볍게 달라지면 다행이지만, 훨훨 날며 춤추던 사람이 휠체어를 타게 될 수도 있어. 그런 질병과 사고를 운 좋게 피한다 해도 늙어가는 걸 피할 방도는 없어서 언젠가는 모두 환자가 되고 장애인이 돼. 확실한 미래라고 할까. 그래서 사람에게 의료는 필수 중의 필수야.
길, 가로등, 운동장, 학교급식, 도서관, 와이파이, 공원, 소방서
그런데 사람의 형편은 저마다 다르잖아? 빨리 달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겨우 걷는 이가 있고, 넘치도록 많이 소유한 부자가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처럼 다른 ‘형편’을 그냥 내버려두면 어떤 사람은 아예 생존할 수 없게 돼.
그래서 대부분 사회에서는 모두를 위해, 생활에 필수가 되는 기반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 공동으로 소유하는 만큼 그걸 이용할 권리가 모두에게 있어. 힘이 세든 약하든, 주머니가 가볍든 무겁든, 누구라도 이용해. 이와 같이 뭔가를 사회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 모두가 이용하게 할 때 그걸 ‘공적(公的)으로 제공’한다고 해.
어디, 우리 사회가 공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 볼까? 오, 금방 나오는구나. 언제든 다닐 수 있는 길, 어둠을 밝혀주는 가로등, 뛰어노는 학교 운동장, 다 같이 먹는 학교급식, 책을 맘껏 보는 도서관, 자유롭게 통신하는 공공 와이파이, 자연 속에 산책하는 공원. 더 있다고? 그래, 잠시 멈추고 그것들의 공통점을 말해볼래? 음, 왠지 기분 좋고 든든한 느낌을 준다고? 옳아, 그거야. 한 마디로 공공성이라고 해. ‘공존, 공생하게 돕는 성질’ 또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성질’이라고 할 수 있어.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이롭게 작용하는 성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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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가가 공적으로 제공하는 것의 범위는 넓어. 국가의 임무가 국민의 공존, 공생에 있는 까닭이야. 그래서 국토를 지키며 범죄를 단속하고 소방, 우편, 철도 등을 직접 관리해서 그걸 모두가 이용할 수 있게 해. 만약 그 일들을 국가가 하지 않고 몇몇 개인 손에 넘겨 버리면 어떻게 될까? 소방을 예로 들어, 지금과 같은 공공 소방서는 없고 개인이나 기업이 영업하는 사립 소방서만 있다면? 상상도 어렵지만, 아마도 불이 났을 때 돈을 내야 불을 끌 거야. 소방서를 소유한 ‘사장님’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다그쳐서 소방대원들이 부잣집에 불이 나면 빠르게 달려가고 가난한 동네에는 달려가는 걸 주저할지도 몰라. 그리고 불이 나야 돈을 버니까 소방서가 화재 예방에 무관심하고 은근히 불이 나기를 바랄 수도 있어. 등골이 오싹하다고? 그러게 말이야. 그런 세상은 절대로 오면 안 돼.
공공병원이 겨우 5%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오싹한 상상이 그대로 현실인 분야가 있어. 생활에 필수 기반인데도 그 일을 하는 공공기관이 아주 드물고 사립기관만 많은, 그건 바로 의료야.
병원(조그만 개인의원이 아닌 큰 병원)이 전국에 모두 4천여 개인데 거의 전부가 사립이야. 공공병원은 겨우 2백여 개로 전체의 5%에 불과해. 서울만 보면 공공병원이 23개로 서울의 전체 병원 중에 4%이고, 인구가 9백4십만 명이므로 공공병원 1개당 인구가 42만 명이야. 대도시 중에 공공병원이 가장 희귀한 곳은 울산인데 인구 111만 명에 공공병원은 오직 1개뿐이고, 그 지역의 전체 병원 중에 단 1%야. 99%의 의료를 사립병원이 맡은 거야.
이상하지? 전국에 소방서는 100%가 공공이고 학교도 70%가 공공이야. 그런데 병원은 공공이 5%뿐이니, 의료를 필수 분야라 하면서도 유독 다르게 취급하고 있어.
물론 우리나라 정부가 의료에 대해 아주 손을 놓은 건 아니야. 무엇보다, 우리 모두를 위한 의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을 직접 관리해. 국민에게서 건강보험료를 걷고, 진찰·검사·입원·수술 같은 의료 행위의 수가(가격)를 정해서 병원이 의료비를 함부로 비싸게 매기지 못하게 통제하고, 병원이 청구한 의료비 내역을 심사해서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하지 않게 감시하고, 심사를 마치면 의료비를 내줘서 병원이 그 돈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그 일에만 머무른다는 거야.
진짜 정부의 책임은 그보다 더 폭넓은 의료보장이야. 누구든 필요할 때 안심하고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해. 그 책임을 과연 보험료를 모아 절차를 거쳐 의료비로 내주는 것, 다시 말해 보험 관리만으로 다 할 수 있을까? 아픈 사람에게는 병원이 있어야 하고 병원이야말로 의료의 현장인데, 우리나라 정부는 한사코 병원을 ‘공적으로 제공’하려 하지 않는 거야. 사립병원이 절대다수이고 공공병원은 겨우 5%인 상황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방치해. 과연 이렇게 해도 국민을 위한 의료보장이 가능할까?
다른 나라에 견주면 우리의 이 상황은 거의 ‘기이하다’고 할 수 있어. OECD1) 회원국에서 공공병원이 많게는 100%(영국과 캐나다), 대개는 40~90%로, 응급실·중환자실·수술실·분만실을 갖춘 큰 병원이 대부분 공공병원이야.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중증질환에 첨단 의술을 시행하고 산모가 안전하게 분만하도록 돕는 일을 거의 전적으로 공공이 맡는 거야. 사립병원은 대개 재활이나 요양을 담당하며 규모와 역할이 작아. 다만 미국과 일본에는 공공병원이 그만큼 많지 않아. 그래도 전체의 약 20%로 우리보다는 몇 배 더 많아.
1)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는 1948년에 서유럽 16개 국가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만든 국제기구야. 경제협력을 하는 외에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 국제적인 통계를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해. 지난번 글에서 자세히 소개했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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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어야 하는 의료, 협력하지 못하는 의료
사립병원만 있더라도 건강보험이 관리하니까 괜찮지 않냐고? 공공병원은 아니어도 ‘공적으로 제공’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지 않겠냐고? 중요한 질문이야. 차근히 생각해 보자.
사립병원은 의료인이 자기 뜻에 따라, 자신의 힘으로 세우는 사업체야. 선한 뜻에서 시작한, 우수한 의료를 시행하는, 환자에게 헌신하는 사립병원을 나는 여럿 알고 있어. 그러나 그 ‘선함’과는 별개로 사립병원이 할 수 있는 의료에는 한계가 있어.
첫째로, 돈을 벌어 이익을 얻어야 하는 데서 비롯되는 한계야. 병원은 환자를 진료해 수입을 얻지. 그 돈을 인건비, 시설 관리비, 장비 구입비 등에 써서 살림살이를 해. 공공기관은 정부 예산을 받지만,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한 사적(私的) 기관인 사립은 사업 수입으로 돈을 마련해.
그런데 의료는 아픈 사람을 돌보고 병을 낫게 하는 일이라 일일이 계산할 수 없는 노력과 정성이 들고, 그걸 정확하게 보상해 줄 수가(가격)는 세상에 없어. 도리어 거꾸로 가기도 해. 의료진 다수가 숱한 시간을 들여 중증 환자를 치료했을 때 그 대가로 받는 돈을 따져보면 병원이 도리어 손해를 입고, 반면에 값비싼 기계로 하는 진단검사에서는 꼬박꼬박 이익을 보는 식이야. 특히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에는 이런 경향이 심해. 그래서 손해가 나는 응급실·중환자실을 줄이거나 없앤 뒤 일반 병실로 바꿔버리고, 이익을 보는 검사 시설을 늘리는 병원들이 있어. 수입을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돈을 따라가다가 자칫 의료의 본뜻을 놓쳐버릴 위험도 어른거려.
둘째로, 다른 병원과 경쟁해야 하는 데서 비롯되는 한계야. 우리나라에는 의료기관의 역할을 정하는 제도가 없어서 감기처럼 가벼운 병에도 큰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고 큰 수술을 작은 의원에서 할 수도 있어. 환자에게 무제한의 ‘자유’가 있다는 건데, 실은 혼란스러워. 떠도는 정보에 의지해서 병원을 찾는 환자는 돈과 시간을 허비해. 그리고 의료기관은 경쟁에 시달려. 전국의 모든 병원과 의원이 서로에게 경쟁자가 되어 누군가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해. 그래서 병원들은 가까이에 있어도 동료 관계를 맺지 못해. 서로 역할을 분담하거나 협력한다는 건 그저 듣기 좋은 말일 뿐이야.
흔히 시장에서 경쟁하면 상품의 품질이 좋아지고 값은 싸진다고 하지? 어떤 물건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의료에서는, 특히 높은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고난도 진료에서는 그렇지 않아. 오히려 경쟁이 일을 방해해. 병원 간, 전문인력 간 협력한다면 가능했을 최선의 진료를 환자에게 해줄 길이 없는 거야. 우리나라 의료는 실제로 경쟁에 발목을 잡혀 있어. 암 진료가 세계적 수준인데도 심장병 환자 사망률이 OECD에서 중하위권을 맴도는 이유야.
잠깐, 그러면 공공병원은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냐고? 겨우 5%인 지금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원체 개수가 적고 마치 태평양에 띄엄띄엄 흩어진 섬 같은 처지라, 분담도 협력도 생각하기 어려워. 그러니까 아까처럼 소방서를 예로 들게. 전국의 소방업무는 체계적으로 짜여 있어. 광역시·도에 소방본부를, 시·군·구에 소방서를 두어 지역과 일을 분담해. 만약 어디에 불이 났는데 그곳 소방서가 혼자 해결하지 못할 만큼 화재 규모가 크면 그 즉시 협력 네트워크를 움직여 이웃 소방서가 달려가. 다른 분야의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로, 분담해서 일을 맡고 어려운 상황에는 협력해.
이처럼 어떤 것을 ‘공적으로 제공’하려면 체계적인 조직, 분담과 협력이 기본이야. 공공병원을 늘려 공적인 체계를 만들려는 노력 없이 건강보험만 관리하는 우리나라 정부는 기본을 무시하고 있어.
공존, 공생, 행복을 위해
그래봤자 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일 뿐이야. 의료는 인권이고 의료보장에는 공공병원이 필요해. 그 권리가 보장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는, 아무리 정부가 등을 돌려 모른 척해도 사그라들지 않아. 오히려 커지고 있어.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해 왔어. 앞서간 원산 노동의원(1928년), 부산 청십자의원(1975년)이 열어준 길을 이어받아 걸었어. 협동조합으로 곳곳에 의료 공동체를 만들어 의원과 주간보호센터를 열고(1994년~), 수원 공공병원을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이유로 사립기관에 넘기려는 경기도청에 맞서고(1999년), 인구 50만 명에 응급의료기관이 전혀 없는 성남시 수정구·중원구에서 공공병원 설립 운동을 십여 년간 펼쳐서 마침내 뜻을 이루었어(2003년~2019년). 대전(2007년~), 화성(2017년~), 울산(2019년~), 서부경남(2019년~)에서도 시민들이 공공병원을 세우려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는 움직임이 더욱 커졌어. 감염병의 위기 속에 국가 책임으로 운영되는 공공병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거야. 2021년부터 광주, 부천, 양산웅상에서 시민들이 공공병원 설립에 나섰어. 부산, 대구, 인천에서도 공공병원을 더 설립하려는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어.
사회 공동의 병원이 우리 생활을 든든하게 해. ‘공적으로 제공’되는 병원이 ‘공존, 공생’을 돕고 ‘모두를 행복하게’ 해. 그러니까 지금 살고 있는 곳에 공공병원을 세울 수 있게 그 움직임에 함께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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