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행감 ‘유감’

2024-11-17

2018년 외식사업가·방송인 백종원씨가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의원들의 질문은 맹탕이었다. 외식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나 프랜차이즈 출점 제한에 대한 생각 등 굳이 백씨가 아니어도 됐을 질문을 이어가다 “사업을 더 크게 일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달라”거나, “우리 지역구에 와서 상권을 살려 달라”는 엉뚱한 얘기로 마무리했다. 백씨의 브랜드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고 따져 묻겠다던 의원들은 오히려 그에게 강의를 듣는 입장이 됐다. 백씨의 스타성과 전문성이 의원들의 비전문성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공부하지 않는’ 의원들이 유명인과 함께 시선이나 끌어보겠다는, 보여주기식 국감의 대표 장면으로 꼽힌다.

스타 셰프 증인 부른 서울시 행감

유명인 모시기 급급 국감 닮은꼴

전문성 부족, 보여주기 질문 실망

2020년에는 EBS 캐릭터 펭수를 국감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올해는 인기 아이돌 뉴진스 멤버 하니가 직장 내 집단괴롭힘 문제의 참고인으로 출석했지만, 적절성 논란이 나왔다. 결국 불발됐지만, 국내 축구경기장 잔디 관리와 관련해 제시 린가드 선수(FC서울)의 출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니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등 유명인을 부른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정성은 건국대 교수). “D학점이다. 애초 전문성 있는 의원들로 상임위가 구성되지 못해 정책감사가 되지 못했다”(명지대 정회옥 교수). “준비를 많이 했는데 질의시간이 답변시간 포함 아침 5분, 오후 7분, 저녁 3분으로 짧아 아쉬웠다”(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달 30일 경실련 주최로 열린 ‘2024 국정감사 평가와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쏟아진 말들이다. 경실련은 “민생은 뒷전인 채 정쟁에 파묻혀 막말 고성 등이 오가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한 국감”이라고 총평했다. 증인·참고인 1000명을 소환했으나 의원당 질의시간이 하루 15분, 증인 신문에 쓸 수 있는 시간도 5분 정도라 과시성 소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원호 교수는 한 글에서 이처럼 국감이 보여주기식 기획성 쇼에 매몰되는 이유로 “우리나라 국정감사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예산심의 이전 단 30일 동안 국회가 모든 피감기관의 모든 사안을 감사하는 정기 청문회 형식으로 자리 잡은 것”을 꼽았다. “30일 안에 500여 개 기관에 대해 한꺼번에, 그것도 기관장이 출석해 질의응답하는 5분의 미니 청문회” 방식이니 폭로와 눈길끌기, 화제성 위주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감에 이어 이번 달에는 서울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행감)가 열렸다. 여기라고 다를까. 지난 8일 서울시 문화체육관광위 행감에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로 인기가 치솟은 유명 셰프 안성재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안씨의 미쉐린(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모수가 4년 연속 선정된 ‘서울 미식 100선’의 공정성을 묻기 위해서라는데, 하나마나한 안이하고 부적절한 질문으로 빈축을 샀다. 상을 받은 사람에게 공정성 여부를 묻는 것도 난센스인데, 미쉐린 심사 방식 등 기본적인 정보 확인에 시간을 썼다. 안씨도 “심사는 최대한 공정해야 한다”는 원론적 답변을 했다. 그 외에도 “파인다이닝 말고 노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든지, “서울시 관광, 외식 발전에 기여하는 방안” 등 두루뭉술한 질문이 이어졌는데, 안씨는 “제 자리에서 제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안성재 효과로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하나같이 “수준 이하 부끄러운 질문, 한심한 시의원·구의원이 너무 많다, 바쁜 사람 불러서 뭐하는 건가” 등 험악한 댓글들이 달렸다.

국감 하면 떠오르는 게 피감기관이 의원실에 제출하는 산더미 같은 분량의 자료 모음집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가 국감과 행감에 제출한 자료 모음집 제작을 위해 매년 1000여 그루의 나무가 사라진다고 한다. 다른 기관까지 확대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과연 그 쓸모를 다하고 있는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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