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등 식당의 비결] 태국 방콕 ‘가간(Gaggan)’

올해 3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에서 1위는 태국 방콕에 위치한 레스토랑 ‘가간(Gaggan)’이 올랐다. 인도 출신의 가간 아난드(48) 셰프가 본인의 이름을 딴 곳으로 이미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를 다섯 번이나 거머쥔 가간은 단순한 레스토랑이기보다는 공연을 하는 극장 식당에 가깝다. 가간 셰프는 자신의 레스토랑 컨셉을 “cooksical(쿡시컬)”이라고 소개했다. Cook(요리하다)과 Musical(뮤지컬)의 합성어로 단순히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3시간 남짓한 공연을 통해 음식과 음악, 문화와 경험 등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현재 가간의 메뉴는 총 28개인데, 이를 손님에게 낼 때도 총 5개의 막으로 구성한 스토리에 따라 서빙한다. 각 막은 크게 가간 셰프 본인이 태어난 인도, 셰프로서 경력을 쌓은 태국, 그리고 요리 영감을 많이 얻는 일본 등 세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2015년부터 4년 연속 아시아 식당 1위

인도 벵골주 콜카타 지역에서 태어난 가간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향신료를 접하며 미각을 키운 그는 조리학과에서 요리를 배웠고, 서른 살이 되던 2007년 캐리어에 셔츠 4장과 청바지 2장 그리고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만 넣고 태국으로 떠난다. 여러 레스토랑에서 인도 음식 컨설팅을 시작한 그는 태국이 좋아 정착하기 위해 호텔에 취업한다. 이 시절 동료 셰프들과 업무 후 야식을 즐길 때마다 그는 “나는 언젠간 인도음식으로 파인 다이닝을 할 거야” 다짐했단다. 마침내 2010년 가간은 방콕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열었다.
가간의 쿡시컬은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레스토랑보다 어두운 조명과 신나는 로큰롤 음악이 손님을 반긴다. 좌석은 모두 카운터 석이다. 일행과 마주 보며 먹는 대개의 레스토랑과 다르게 이곳에선 중앙에 있는 키친이 무대가 되고 손님은 그 무대를 보며 식사를 하게 된다. 자리로 안내받은 후에는 그날 공연에 대한 안내를 받게 된다. ‘식사를 즐기며 관객으로서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 ‘언제라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를 것’ 등이다.

모두 착석을 하면 그때부터 가간의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로 변신한 키친에서 셰프들은 요리뿐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한 배우가 된다. 예를 들어 음식을 소개할 때면 무대 위 배우처럼 과장된 목소리와 동작을 선보인다. 물론 손님들도 어느새 음악에 맞춰 자신의 배역(?)을 수행하게 된다. 퀸의 히트곡인 ‘We Will Rock You’가 흘러나오면 손님 모두 따라 부르며 박수를 치고 테이블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비틀즈의 ‘Hey Jude’가 흘러나오면 국적, 나이 불문하고 따라 부른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함께 온 일행이 아니어도 유대감이 형성돼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도 나누게 된다.
가간 셰프에게 식사 경험을 공연 형식으로 만든 이유를 묻자 “디지털 시대에 죽어가는 아날로그 예술을 부활시키고 싶었다”고 답했다.
전문 공연장 뺨치는 화려한 조명, 볼륨을 높인 로큰롤 음악 등은 기존 파인 다이닝에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요소들인데 가간에선 식사 방식도 특별하다. 손으로 식사를 하는 인도에서 자란 가간 셰프는 포크와 나이프를 순서대로 사용해야 하는 형식에 의문을 던지고, 도구 없이 손으로 먹을 수 있는 코스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는 서양식 다이닝의 권위를 깨고 좋은 음식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그만의 철학이다.
서양식 다이닝의 권위보다 파격 선택

예를 들어 메뉴 ‘요거트 익스플로전’은 내 손이 접시가 된다. 손을 내밀면 셰프가 바삭한 칩을 얹고 요거트 몇 방울을 뿌려준다. 또 다른 메뉴 ‘릭 잇 업(Lick it up)’은 말 그대로 포크나 수저 없이 혀로 접시를 핥아먹게 플레이팅된 요리다. 모든 사람이 접시를 들어 혀로 깨끗하게 핥아 먹는 광경은 흥미롭고 신선하다.
가간 셰프는 “어느 순간 파인 다이닝의 허세가 싫어졌다”며 “즐거우면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식사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기존 파인 다이닝의 권위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생각은 아주 독특한 메뉴에서 절정을 이룬다. 손님들이 공연과 음악에 취해 있을 때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뇌 모양 음식에 붉은색 소스를 피처럼 뿌린 메뉴가 나온다. 셰프들은 “지속 가능한 다이닝을 위해 레스토랑 근처에서 잡은 태국 길거리 쥐의 뇌로 요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손님들이 놀라면, 셰프들은 능청스럽게 어떻게 요리했는지 조리 과정까지 들려준다. 물론 이 ‘쥐 뇌’ 요리는 다양한 채소가 주 재료로, 지속가능한 다이닝과 풍자를 담은 가간 공연의 일부다.
뮤지컬이 끝나면 배우들이 차례로 인사하는 것처럼 가간에서의 마지막 역시 무대 인사로 끝난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줄을 선 셰프들은 모든 손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가간은 기존 파인 다이닝의 권위에 도전하면서도 이를 아날로그적 공연과 접목해 새로운 방식으로 음식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세상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식사다.

김정아(Anica Kim) The Hungry Tourist Korea 대표. 미국 뉴욕에서 자랐고 이후 교토·런던·도하·상하이·서울에서 생활하며 세계의 문화와 미식에 빠졌다. 향후 격월로 직접 방문해본 아시아 지역 1등 식당들의 생생한 모습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