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이 내년부터 8년간 보험료를 인상하는 연금개혁을 단행하면서 이 기간 늘어나는 기금을 국내 벤처캐피털(VC)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연금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보험료 인상으로 가입자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만큼, 해외에 배분한 투자금을 국내로 돌려 경제활성화와 수익률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1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의 일부 위원은 최근 회의에서 연금개혁 이후 기금운용방안에 국내 VC출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연금 개혁을 계기로 국민연금의 국내 VC 출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기금운용위원회가 논의할 문제"라고 전했다. 한 국민연금 전문위원은 “국내에서 늘린 보험료를 기존 계획대로 해외에 투자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제기가 있다”면서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도 국내 VC 출자를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국내 VC출자 확대를 주장하게 된 계기는 국민연금 개혁이다. 2026년부터 국민연금 보험료를 매년 0.5%포인트씩 8년간 인상하면 2033년에는 9.5%인 보험료가 13%까지 늘어난다. 늘어난 보험료에서 나가는 보험금을 빼도 투자수익을 포함해 2026년부터 2029년까지 매년 65조~71조 원의 신규조성 자금이 만들어진다.
국민연금은 5년 단위 중기 자산 배분 계획을 통해 국내보다 해외로 전통 자산보다 사모펀드(PE)나 VC비중을 늘리는 방향을 잡아 놓았다. 평균적인 장기 수익률이 국내보다 해외가 높고, 기금고갈 시점에 자산을 회수할 때 국내 시장을 요동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다만 국내 VC출자 확대를 주장하는 위원들은 전체 기금 운용규모에 비해 VC출자 비중이 절대적으로 작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3월말 기준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의 실질적인 운용자산 213조 6000억 원 중에 국내 사모투자는 11조 6500억 원에 해당하지만 이 중 대부분은 VC보다 프라이빗에쿼티(PE)에 몰려있다. 2024년 역대 최대 규모였던 1조 5500억 원의 국민연금 국내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에서 PE에는 8000억 원을 배정했지만, VC는 2000억 원 뿐이었다.
국내 투자환경도 VC출자에 우호적이다. 정부는 연간 40조 원 규모의 벤처투자 시장을 조성하고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유니콘 기업을 50개 이상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에 기준(통합) 포트폴리오를 도입하면서 과거처럼 투자 자산을 주식·채권·대체투자나 지역별로 구분한 방식에서 벗어난 점도 투자 전략을 유연하게 해준다. 통합 포트폴리오를 도입하면 미리 정한 지침이나 자산 구분이 아니라 주식과 채권 성격이 뒤섞인 자산을 그때그때 선택해서 투자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연금개혁으로 인해 젊은 가입자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국내 VC 출자는 또 다른 반발을 낳는다는 우려도 있다. 익명의 한 관계자는 “국내 경제 활성화를 염두에 둔 국민연금의 투자는 현재세대에 유리한 국민연금 제도로 인한 미래세대의 불만을 더욱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