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하다는 ‘피클볼’ 쳐봤다

2024-10-19

주말인 지난 12일 오후 서울 은평구 증산초등학교 체육관.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자 20여명의 성인 남녀가 작은 라켓으로 플라스틱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코트에 선 사람들이 스코어를 외치는 목소리와 공이 라켓에 부딪히며 내는 ‘팡’ ‘팡’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한쪽에는 천천히 라켓 휘두르는 시늉을 하면서 자세를 알려주는 이도 보였다.

이곳은 피클볼(Pickleball)에 푹 빠진 2030세대, ‘투덜새 클럽’ 회원들이 모인 곳이다. 동호회 이름은 매주 화요일(Tue)·목요일(Thu)·토요일(Sat) 모여 피클볼을 친다는 뜻을 담았다. 부클럽장 안성범씨(34)는 “클럽이 처음 만들어진 건 지난해 9월”이라면서 “친한 친구 4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1년 사이에 회원이 35명으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피클볼은 미국에서 인기몰이한 생활체육 종목이다. 미국 스포츠·피트니스산업협회(SFIA)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피클볼을 ‘미국 내 급성장 스포츠’ 1위로 꼽았다. 피클볼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의 취미로도 알려져 있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명소인 울먼 링크 스케이트장은 4월부터 10월이면 피클볼 코트로 변신한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심상찮은 성장세를 보인다. 곳곳에 전용구장이 생기는가 하면 대한피클볼협회나 지자체가 주최하는 대회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린다. 피클볼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아이러브피클볼’ 가입자는 15일 기준 3500명이 넘었다.

사람들은 어쩌다 피클볼에 빠졌을까. 피클볼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동호인들과 전용구장 관계자는 “30분만 배워도 게임이 가능하다” “할아버지·아빠·딸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다” “공을 칠 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가 매력적이다” 등으로 답했다.

■‘피클볼’이 대체 뭐길래…기자가 해봤습니다

“피클볼의 가장 큰 특징은 공이에요. 테니스공이나 탁구공과 달리 구멍이 숭숭 뚫려 있거든요.”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옥상에 자리한 ‘엠무브스포츠라운지’에서 김형진 엠무브 스포츠매니저 총괄부장이 패들(피클볼용 라켓)로 공을 넘겨주며 말했다. 피클볼 공은 테니스용보다 약간 크고 속이 텅 비어 있다. 표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다(실내용은 26개, 실외용은 40개). 이 때문에 공기 저항을 받아 공의 속도가 느린 편이고, 치는 사람이 그 방향을 통제하기도 쉽다.

김 부장이 던진 공을 간신히 패들로 받아내자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패들 끄트머리에 맞아 방향이 약간 흔들렸으나 공은 네트를 넘어 상대방 코트에 꽂혔다. 공이 맞을 때마다 ‘팝콘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10분가량 실수를 거듭하며 패들을 휘두르자 금세 공의 감각에 익숙해졌다. 김 부장은 “‘운동은 숨쉬기밖에 안 해봤다’는 한 여성분도 막상 패들을 잡고 공을 쳐보시더니 ‘생각보다 쉽다’며 좋아하셨다”면서 “피클볼은 30분에서 1시간만 배워도 충분히 랠리(rally·공을 상대방과 주고받는 행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피클볼 규칙은 대체로 테니스와 비슷하다. 11점을 먼저 얻는 쪽이 승리한다. 10 대 10 동점이 되는 경우 2점 차이가 날 때까지 경기가 이어진다. 다만 네트 앞 ‘논발리존(Non-Volley Zone)’에서는 공이 코트에 닿기 전 쳐내는 발리가 금지된다. 패들은 탁구채와 비슷하고, 코트는 배드민턴(가로 13.4m, 세로 6.1m)과 같다. 한 동호회원은 “배드민턴 코트에서 탁구채로 치는 테니스”라고 표현했다.

■“짜릿짜릿 손맛에 부모님도 푹 빠져버렸죠”

클럽 회원들 사이에서도 ‘피클볼 중독자’로 통하는 이희진씨(28)는 “타격감”이 피클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이씨는 “패들로 공을 칠 때 나는 특유의 경쾌한 소리가 있는데, 서브가 잘 들어갈 때면 마치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날 때도 있다”면서 “퇴근 후 직장에서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 피클볼 소리가 주거지 내 이웃 간 분쟁 사유가 되기도 한다.

진입장벽이 낮아 다양한 세대가 함께 즐긴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영무씨(34)는 지난해 11월 어머니와 함께 팀을 이뤄 피클볼 대회에 나갔다. 이씨는 “어머니가 원래 테니스를 치셨는데 어깨가 안 좋아서 한동안 쉬고 계셨다”면서 “제가 피클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클럽에 와보셨다가 재미를 붙이셨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서진영씨(25·가명)도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피클볼을 워낙 좋아하셔서 내년 생신 선물로 함께 쳐드리려고 클럽에 가입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껜 아직 비밀이라 기사에는 꼭 익명으로 써줘야 한다”며 웃었다.

지난해 초 피클볼을 시작한 직장인 장수영씨(32)는 “입문은 쉽지만 중급자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익혀야 할 기술이 굉장히 다양하다”면서 “피클볼은 계속 새로운 세계가 보이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지난 6월 경북 안동에서 열린 ‘2024 월드 피클볼 챔피언십 코리아’ 주최 측 운영요원으로도 참여했다는 장씨는 “피클볼이 더 알려져서 전용구장도 늘어나고 함께 즐길 사람도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피클볼은 1965년 미국의 정치인 조엘 프리처드 등이 아이들과 즐기기 위해 직접 라켓을 만들고 배드민턴 코트에서 룰을 정해 게임한 것에서 유래했다. 국내에서는 허진무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가 미국에 다녀온 후 2016년 연세피클볼클럽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수년간 피클볼 보급·확산 활동을 해온 조윤환 마포구피클볼협회장은 “2019년 전국적인 피클볼 이벤트를 열었을 때만 해도 모인 인원은 20명 정도에 불과했다”면서 “이후 부산·대구 지역에서 강습회를 하면서 조금씩 퍼졌고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사람들이 소수가 즐길 수 있는 야외 스포츠를 찾으면서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적 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도 ‘논발리존 규칙’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얼마든지 높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피클볼은 굉장히 ‘평등한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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